[문화산책] 예술가의 비용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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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17 07:49  |  수정 2020-01-17 07:53  |  발행일 2020-01-17 제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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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화가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물감값'을 하라며 지인이 그림을 사줬다는 사연을 접할 수 있다. 낭만적이고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일화다. 그러면 지금 시대의 예술가들의 '물감값'은 어느 정도가 될까?

예술가의 비용은 이제 '물감값'만으로 되지 않는다. 화가의 경우, 물감의 가격이 싸지도 않을뿐더러 캔버스와 붓도 필요하다. 하지만 비용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작업실을 유지하는 비용 또한 만만하지 않으며, 전시를 치르려면 촬영비, 운송비, 홍보비, 도록 제작비, 소모용품비 등 많은 부대비용이 든다.

다행스럽게도 각 지자체에서는 작가들의 이런 어려운 점과 예술가들의 성장을 돕고자 40세 이하 청년작가들을 대상으로 레지던시를 운영하고 있다. 레지던시란 한 장소에 정주하며 작품을 만들고 활동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레지던시는 대구에 두 곳, 가까운 이웃 도시 영천에 한 곳이, 전국적으로 많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예술가의 조건은 다른 곳도 녹록지 않아서 레지던시 응모에 전국의 젊은 작가들이 많이 참여한다. 그러다 보니 매년 경쟁은 치열해진다. 대구의 대표적인 두 곳의 레지던시 공간 입주작가들의 분포를 보면 지역대학 출신의 작가들이 많이 선발되기보다 타지역의 작가들이 많이 입주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지표는 대구가 폐쇄적이지 않고 전국의 청년작가들을 대상으로 레지던시를 운영한다는 개방성을 입증할 수 있는 좋은 사례다. 하지만 지역의 많은 예술 관련 졸업생들의 수와 고군분투하는 대구경북의 젊은 작가들에게 기회의 문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지역 문화예술 정책의 지혜가 필요한 부분이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예술가의 비용'이라는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레지던시 선발 여부로 응모자들의 작품활동에 가치가 매겨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레지던시나 공모에 뽑혀야만 예술작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세상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는 레지던시의 철학과 방향성에 대한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술가 스스로의 계획이다. 예술을 위한 '여행 시간표'는 예술가 스스로가 가장 진실하게 세울 수 있다. 또한 세상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한 '예술적 비용'에 대한 깊은 고민은 예술가의 가장 값진 자산이다. '예술가의 비용'이 담보가 돼 또 다른 차별과 경쟁, 가치의 우열이 정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성규〈시각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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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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