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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호원〈다님그룹 대표〉 |
며칠 전 또 한 살 나이를 먹었다. 나이라는 숫자는 매년 이렇게 늘어나는데 나는 점점 작은 일상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호텔 방 커다란 창문 앞으로 강물이 흐른다. 하늘은 적보랏빛으로 물들어있다. 구름들은 가늘고 길게 늘어서서 하늘 빛이 조금씩 변할 때마다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정신없이 보고 있었나 보다. 순식간에 해가 졌다. 하늘도 구름도 강도 모두 어둑해졌고, 동그란 불빛들만 총총히 켜져있다.
갓 돌이 지난 아이가 생긋이 웃는다. 뽀얗다. 피부처럼 눈동자도 맑다. 어른이고 아이고 둘러 앉아 그 아이만 쳐다본다. 아이의 작은 표정과 몸짓과 손짓까지 놓치지 않고 지켜본다. 아이가 웃으면 우리도 함께 웃는다. 설날 아침 본가에서 차례를 지내고, 방콕 짜오프라야 강변 호텔로 오기까지 우리는 이렇게 아이를 쳐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음력 1월2일 아침이 밝았다. 아이들은 눈을 뜨자마자 배가 고프다고 난리다. 밥을 먹자마자 "수영장"을 외친다. 주섬주섬 챙겨 수영장으로 달려간다. 이제 세살, 여섯살, 여덟살, 열살이 된 아이들과 함께 물속으로 들어갔다. 여섯살부터는 튜브를 끼고 혼자서도 잘 돌아다닌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다시 이쪽으로 누가 빨리 가나 놀이를 시작했다. "어푸 어푸" 아이들은 정신없이 헤엄을 친다. 여섯살 남자 아이가 힘겨운 표정으로 소리를 친다. "빨리 가는 게 일등 아니에요. 천천히 가는 게 중요해요." 계속 형, 누나가 일등을 하다보니 꾀가 나서 그랬는지, 아니면 누구 말처럼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의미였는지를 모르겠다.
열 살 누나를 쫓느라 물 속을 가장 맹렬히 돌아다녔던 여덟 살 아이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나가보니 하얀 수건을 꽁꽁 싸매고 선베드에 누워 잠이 들어있었다. 땀이 송글송글 맺힌 이마를 쓸어 올리며 생각한다. '벌써 여덟 살이라니.' 한달 전 이 녀석과 나는 타이베이에 있는 작고 낡은 절에 갔었다. 향을 꽂고 절하는 사람들을 보더니 저도 하겠다고 해서 향을 얻어다 주었다. 사람들을 따라 향을 꽂더니 작은 손을 모으고 넙죽 절을 한다. 그리고 내 손을 잡더니 빠른 걸음으로 절 밖으로 나간다.
"아빠, 내가 무슨 소원 빌었는 줄 알아?" 조그만 손을 동그랗게 모으고 내 귀에다 속삭인다. "있잖아. 내가 재미가 없을 때는 시간이 느리게 가는데 내가 재미있는 걸 하면 시간이 자꾸 빨리 가. 그래서 시간이 언제나 똑같이 가게 해달라고 빌었어."이호원〈다님그룹 대표〉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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