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과 고난 때문에 도전할 수 있었죠" 운동하는 성악가 박영민씨

  • 도성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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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8-19   |  발행일 2020-08-19 제12면   |  수정 2020-08-19
中 1학년 때 '망막박리' 판정
성악 공부하며 힘든시간 극복
건강 관리로 시작한 피트니스
운동하며 자신감·목소리 되찾아
피트니스대회 '톱6' 안에 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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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박영민씨는 성악 무대든, 피트니스 무대든 자신감을 갖고 항상 최선을 다한다. 그의 에너지원은 바로 가족이다. <박영민씨 제공>

"망막박리는 망막이 안구내벽으로부터 떨어져 들뜨게 되는 병으로 자칫 실명이 될 수도 있어요."

중학교 1학년 시절을 회상하며 박영민(40)씨는 자신에게 찾아온 질병에 대해 담담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오른쪽 눈에 이상을 느껴 찾은 동네의원에서는 영양실조라고 해 집에서 휴식을 취하라고 했다. 이후 상태가 더욱 나빠지면서 안과전문병원을 가고서야 '망막박리'라는 진단과 함께 조기 치료시기를 놓쳤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망막박리가 당뇨 합병증 등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당시 중학생에게는 흔한 경우는 아니라고 했다.

14세 때부터 전신마취로 수술을 다섯 번이나 받아야 했다. 망막이 손상될 수 있다고 해 수술 후에는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있거나 엎드려 있어야 했고, 시신경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왼쪽 눈까지 가린 채 칠흑과 같은 어둠 속에서 수개월을 지내야 했다. 실명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그를 두렵게 만들었고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기를 즐기며 아나운서의 꿈을 가졌던 소녀를 절망 속으로 빠뜨렸다. 치료 과정에서 장기간 학교를 갈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선생님들과 학교 측의 배려로 학교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어둡기만 했던 그의 미래는 노래 실력을 눈여겨본 음악 선생님이 성악을 권하면서 다시 희망을 찾게 됐다. 실력을 쌓아 우수한 성적으로 성악대회에 수차례 입상한 그는 경북예고를 거쳐 계명대 성악과로 진학했다.

하지만 체력이 부족해 저녁마다 녹초가 되기 일쑤였고 몸이 회복되지 않으면 노래를 할 때 제대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대학교 때 성우나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어 했던 그는 다시 한번 좌절을 경험했다. 성악을 포기할까 망설이다 체력을 키우기 위해 피트니스를 시작했는데, 다행히 체력이 좋아지면서 노래할 때 자신감과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 6년간 이탈리아 로마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귀국한 후에는 대구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바로크 이전 시대의 고음악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 서른이 넘어서는 2년마다 독창회를 열어 매회 다른 레퍼토리로 고음악을 소개하고 있다. 2년 전 뜻을 함께하는 여러 지역 음악가들과 'PAN 연구회'를 만들어 정기 연주회를 개최하고 있다. 작년부터 올해 2월까지는 음악전문MC로 KBS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청취자들에게 고음악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고음악에 대해 "매우 절제된 음악으로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성악가로서의 활동뿐 아니라 여러 학교에 출강하며 많은 후배를 가르쳤다. 앞만 보며 열심히 달려온 그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육아를 병행하며 심신이 많이 지쳐갔다. 친구가 살고 있는 말레이시아에 다녀온 이후 평온한 삶의 모습에 반해 버렸다. 가족과 상의 끝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자는 생각으로 이민을 결심했다. 이민 준비가 다 되어갈 때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 코로나19 사태가 번지며 이민 계획이 무기한 연기됐다. 대신 학교 출강, 대외 활동 등 대부분의 스케줄을 정리했기 때문에 남는 시간을 활용해 작년부터 다시 시작한 피트니스를 본격적으로 해보기로 했다.

작년 건강검진 결과표를 받아 들고 건강 회복의 필요성을 깨달아 20대 이후 처음으로 피트니스를 다시 시작했다. 4개월 정도 운동을 해서 30대의 마지막 해에 멋진 보디 프로필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우연한 기회로 일반인 피트니스 대회인 나바코리아 대회를 직관한 그는 신세계를 경험한 기분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절제하며 멋진 몸을 만들기 위해 애쓴 모습에 큰 감동을 받기도 했다. 평소 꾸준하게 운동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코치가 농담 삼아 피트니스 대회에 나갈 것을 권했는데, 그 말에 자극을 받아 대회 참가를 목표로 더욱 운동에 집중했다.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두었던 나바코리아 대회 비키니 모델 부문에서 시니어 부문 톱6 안에 들며 입상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내친김에 그는 체지방량을 좀 더 줄여 9월 초에 있을 대회를 준비 중이다.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시작하게 된 운동으로 인해 '운동하는 성악가'로 변신하게 된 그는 원래 발목에도 박리성 골연골염이 있다고 했다.

그를 지치게 하고 어느 순간 좌절하게 만든 일들은 그를 더욱 단련시켰고 매번 새로운 도전으로 극복해냈다. 변화를 주저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그는 '결과를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찾으라'는 부모님의 한결같은 가르침을 첫째로 꼽았다.

성악 무대든, 보디빌더 무대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함께 기뻐하는 남편의 지원과 어린 나이에도 엄마와 한 시간 넘는 거리를 같이 걷는 아이들의 응원을 빼놓을 수 없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던 여자 성악가가 비키니를 입고 단련된 근육을 자랑하는 모습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를 아는 많은 음악가 동료들도 그의 모습을 존중하고 응원한다. 그가 가르치는 성악과 제자들 또한 40대에 접어든 선생님의 모습에 많은 도전을 받는다고 한다.

앞으로 필라테스 자격증, 생활체육지도사 자격증까지 준비 중이라는 운동하는 성악가 박영민씨는 습관의 힘을 강조한다. 도전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습관을 통해 하나씩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한쪽 눈을 볼 수 없었기에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고 발목에 생긴 병으로 더 많이 걸을 수 있었다"며 "건강하지 않았기에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고 고난이 찾아왔기에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눈에 뵈는 게 없다고 볼 수 없는 것은 아님을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증명해내고 있다.

도성현 시민기자 superdos@naver.com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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