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코로나19와 刀削麵(도삭면)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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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16   |  발행일 2020-09-16 제26면   |  수정 2020-09-16
판으로 반죽 긁어내는 도삭면
칭기즈칸 '칼 금지령' 결과물로
700년 이어져 세계인들이 즐겨
코로나 장기화 너나없이 고통
예술가들 창의력 더 빛날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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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규 문화부 전문기자

며칠 전 친한 도예가의 작업실을 오랜만에 찾았다. 종종 들르던 작업실이었는데, 그동안 생각만 하다가 이번에 올해 처음으로 찾아가 보았다.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차실에 들어서니 근래 작업한, 처음 보는 작품들이 많았다. 빛깔과 모양 등이 흥미로운 작품들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차를 마시며 나눈 이야기는 그렇지 못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난 후 5개월 동안 외부 사람의 작업실 방문을 사절하다, 얼마 전부터 찾아오는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최근 코로나19가 재확산되고 나쁜 상황이 계속될 전망이어서 걱정이라고 했다. 가장 큰 걱정은 수입이 없는 현재의 생활을 타개할 방도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대부분 예술가들이 비슷한 사정일 것이다. 그가 하루는 근처에 있는 선배 예술가(화가)를 찾아가 이런 시기에 어떻게 살아갈지 물으니,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그냥 견디면서 작업이나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해 오다 최근에는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의 작품전을 열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직종을 가릴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으나, 가난한 예술가들의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함을 확인할 수 있다.

얼마 전 TV로 '세계테마기행'을 보다가 중국 산시(山西)성 평요고성(平遙古城)의 도삭면 이야기를 접했다. 도삭면(刀削麵)은 일반 부엌칼이 아니라 살짝 굽은 얇은 판 모양의 도구로 반죽을 긁어내 물에 데친 후 고깃국물이나 소스를 넣어 먹는 면 요리다. 다른 면에 비해 두께가 굵고 길이가 짧다. 먹어보고 싶은 이 도삭면의 유래가 흥미롭다. 칭기즈칸이 몽골제국(원나라)을 세운 후 한족의 반란을 염려해 무기류 일체의 소지를 금하는 것과 함께 10가구당 한 자루의 부엌칼만 허용했다. 난감해진 사람들은 칼이라고 할 수 없는, 철판을 이용한 특별한 도구를 개발해 면을 만들어내면서 시작됐다고 전한다.

도삭면은 이처럼 갑자기 맞닥뜨린 불가피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고안해낸 새로운 도구로 만들어 먹기 시작한 음식이다. 이렇게 탄생한 도삭면이 700년 동안 이어져 중국인은 물론 세계인들이 즐기는 음식이 되고 있다.

코로나19는 사람들에게 많은 고통을 주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변화된 현실에 적응하는 다양한 창의력을 발휘하게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위안해 본다. 창의력이나 상상력은 예술가들이 어떤 부류보다 뛰어날 것이다. 지금은 이들의 창의력이 더욱 빛날 시기인지도 모른다. 다들 힘들지만 이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 지원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빛나는 창의력과 상상력을 살릴 여지도 없게 되는 예술가들이 안 나오면 좋겠다. 그리고 다채로운 예술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스며들고 일상이 되는 시대가 펼쳐지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창의력과 더불어 배려와 겸손, 지혜가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절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모든 인간이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사고의 전환을 가져와 지구촌이 보다 살만한 세상, 서로가 평화롭게 어우러져 사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되길 바라면서, 모두가 각자의 '도삭면'을 탄생시키길 바란다.
김봉규 문화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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