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범의 피플] '한국뇌신경과학회장' 문제일 디지스트 뇌과학과 교수 "컴퓨터와 달리 인간 뇌는 바꾸지 않아도 고사양 될 수 있다"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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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2-08 07:37  |  수정 2023-02-08 07:38  |  발행일 2023-02-08 제13면

문제일
문제일 뇌과학과 교수가 디지스트 대학원장실에서 뇌과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진범 편집국 부국장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문제일 뇌과학과 교수가 최근 제24대 한국뇌신경과학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한국뇌신경과학회는 1997년 한국신경과학회와 한국신경생물학회가 통합되어 설립된 국내 최대 뇌과학 분야 학술단체다. 해마다 정기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 과학자들에게 국내 및 국제 연구 동향을 소개하고, 학술정보를 교류한다. 문 교수는 물리학이나 화학 등의 학문과 비교할 때 지금의 뇌과학 연구 수준을 '태동기'라고 했다. 그만큼 역사가 짧다. 국내에서 뇌과학을 독립된 학과로 처음 만든 학교는 디지스트이다. 문 교수는 "기원전 히포크라테스가 뇌는 인간의 지성과 감정을 관장하는 기관이라고 언급한 이래 1906년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 교수가 뇌 구조 및 시냅스 관찰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한 것을 보면 인류가 뇌를 연구한 지는 오래됐는데, 하나의 학문으로 체계화된 건 1982년이다. 당시 신경약리학의 대가인 솔로몬 스나이더 교수를 중심으로 미국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에 신경과학과가 생겼는데, 세계 최초의 뇌과학 독립학과였다"고 말했다. 뇌과학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이 급속도로 진화하면서 인간의 뇌를 대체할 수 있느냐를 놓고 이런저런 말이 나오고 있다. 지난 1일 디지스트 대학원장실에서 문 교수를 만났다. 문 교수는 뇌과학을 크게 4가지 분야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신경생물학, 의약학, 인지과학, 뇌공학을 합쳐 뇌과학으로 부릅니다. 아주 간단하게 구분하자면 치매를 연구한다면 의약학 분야 연구자, '신경세포가 어떻게 생겼어요'를 연구하면 신경생물학 분야 연구자,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을 연구한다면 인지 과학 분야 연구자, 일론 머스크가 개발하는 뉴럴링크 같이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기를 개발하는 사람은 뇌공학 분야 연구자입니다. 대부분의 뇌과학자는 이 4개 분야를 융합한 연구를 하는 것이 보편적인데, 예를 들어 저는 신경생물학 기반으로 의약학 분야 연구를 하면서 후각에 관련된 인지과학 연구를 포함합니다."

뇌 발달, 감성훈련과 운동 중요
"어린 아이에겐 찰흙 놀이가 큰 도움
손가락 촉감센서 나노패턴이 뇌 자극
미술이나 음악 감상도 굉장히 좋아
성인도 감성적 부분 잘 컨트롤해야
신경전달물질 촉진 약물 개발되면
일반인이 초능력 갖는 것도 가능해"

▶어릴 때 뇌를 발달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태어날 때 이미 대부분이 세팅된 동물들과 달리 사람은 비교적 백지상태로 나온다. 이후 뇌의 기본적인 하드웨어는 4~5세에 완성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 인간은 태어날 때 약 250g의 뇌를 가지고 태어나며 4~5세가 되면 성인의 뇌와 거의 유사한 1.3㎏의 뇌를 갖게 된다. 백지상태의 뇌에 뭘 그릴까, 뭘 할까는 온전히 부모의 몫이다. 조기 교육 얘기를 많이 하는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태어나서 4~5세 때까지는 뇌 안에 신경세포가 많아진다. 이후에는 줄어든다. 즉 4~5세 때까지만 팽창하고, 그다음부터 선택적으로 필요한 것만 남긴다. 따라서 4~5세 이전 형성된 회로에 담긴 지식적 경험은 의외로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그러니 4~5세 되면 외워놓은 게 소용이 없을 수 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3세 때를 기억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두 가지 케이스다. 환생을 했거나, 부모가 심은 기억이다. 성인의 뇌로 전환되는 선택의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한 정서적 경험이다. 다양한 정서적 경험을 통해 뇌 속 네트워크나 회로를 형성하게 된다. 정서적 경험이 풍부하면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을 잘 받을 수 있는 회로가 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뇌의 영역(전두엽)은 25세까지 꾸준히 발달하므로 이러한 회로 형성은 올바른 자아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

▶뇌를 발달시키는데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인가.

"뇌 가소성 때문이다. 컴퓨터와 뇌를 많이 비교하는데, 컴퓨터는 고사양이 나오면 신품으로 바꾸지만 사람은 바꾸지 않아도 고사양이 될 수 있다. 7세가 중요하다. 그 시기에 시냅스(신경세포의 접합부)를 정리해 앞으로 살아갈 기본적인 회로를 만든다. 자아가 생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7세가 되면 하드웨어로서의 뇌는 더 이상 커지지 않는다. 그리고 뇌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위축된다. 어른들이 농담으로 '골 빈 놈'이라고 말을 하는데 틀린 게 아니다. 그저 MRI가 없던 옛날에 어른들이 골이 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신기하기도 하다."

▶영화 '리미트리스(Limitless)'를 보면 알약 하나를 먹고 뇌의 한계를 뛰어넘어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되는 모습이 나온다. 가능하나.

"가능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되면 일반적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집중력이 높아져 의욕이 샘솟고 흥미로운 것을 찾게 된다. 따라서 이런 신경전달물질 분비를 촉진하거나 분해를 저하하는 약물을 만든다면 일반인의 능력을 초월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약물 개발도 가능할 수 있다."

▶뇌를 발달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감성 훈련과 운동을 해야 한다. 어린아이들은 찰흙을 가지고 노는 게 좋다. 외국에서 레고를 개발하여 아이들이 갖고 놀도록 하는 것과 비슷하다. 흙은 손가락 촉감센서들의 나노 패턴을 자극하여 뇌를 자극한다. 의식하고 자극을 받으면 피곤해지는데, 무의식적으로 받는 자극은 덜 피곤하다. 아이들이 흙장난을 할 때는 아무런 생각을 안 하지 않나. 감성을 자극하는 미술이나 음악 감상도 굉장히 좋다. 성인도 똑같다. 감성적인 부분을 잘 컨트롤 해야 한다. 아이들과 음악회나 미술관에 다니는 것을 추천한다."

▶창의성을 키우기 위한 훈련은 무엇인가.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다. 경험이 다양성을 생기게 하고,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을 때 많은 관점으로 보게 된다. 창의 회로는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누가 만들어 줄 수 없다. 또 머리를 잘 쉬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쉬는 시간을 잘 관리해야 한다. 쉬는 시간 중에 가장 긴 게 수면이다. 자정부터 새벽 2시에 깊은 잠을 자야 한다. 뇌는 잘 때 제일 활발해진다. 자고 있는 동안 낮의 활동 중 뇌에 생긴 독성물질이나 대사물질 부산물들을 청소하여 깔끔하게 정리한다. 자기 전 휴대폰을 안 봐야 한다. 휴대폰 화면의 빛이 깊은 잠을 방해한다. 명상도 좋다. 명상을 할 때 창의성과 관련된 감마파가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창의 회로'는 스스로 만드는 것
"다양한 경험이 관점의 다양성 키워
피로한 머리 잘 쉬게 하는 것도 중요
수면 직전 휴대폰 사용 피하고 명상
자정~새벽 2시 사이 깊은 잠 들어야
AI 아직 지혜가 아닌 정보제공 수준
언젠가는 뇌처럼 작동할 수 있을 것"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가.

"인공지능은 보편적인 툴(tool)이 될 것이다. 인공지능에는 약인공지능과 강인공지능이 있다. 약인공지능은 어떤 특정한 한 가지 분야의 주어진 일을 인간의 지시에 따라 수행하는 인공지능이며, 제한된 기능을 뛰어넘어 인간의 지성을 컴퓨터의 정보처리능력으로 구현한 시스템이 강인공지능이다. 약인공지능 예로는 로봇청소기를 생각하면 된다. 강인공지능은 사람 쪽에 가까운 것이다. 최근 화제가 된 오픈AI사의 챗GPT처럼 사람처럼 채팅하고, 사람한테 얘기해 주고, 소설 쓰는 식으로 점점 사람 쪽에 다가오는 건데 윤리적인 문제들이 많이 생긴다. 아직은 강인공지능이라도 이미 제공된 정보를 정리하여 우리에게 돌려주는 수준이다. 정보 수준이지, 지식이나 지혜 단계는 아니다. 아직 인공지능에는 왜(why)라는 게 없다. 즉 질문에 답을 하고 요청한 업무를 하지만 스스로 질문을 하고 답을 하는 수준은 아니다. 언젠가 가능하겠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후각 전문가로서 후각과 뇌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후각은 오감 중에서 감정과 가장 밀접하게 닿아 있다. 후각은 냄새를 구별하는 정보처리와 좋고 싫음의 감정처리, 두 가지를 포함한다. 지능(정보처리)과 감정을 다 가지고 있는 게 후각이다. 맡자마자 고개를 획 돌리게 하는 냄새가 있는데, 생존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뇌는 감각계에서 들어오는 신호를 바탕으로 판단하여 운동계로 신호를 내려보내는데, 쥐에게 고양이 냄새처럼 생존에 밀접한 냄새는 뇌가 정보를 분석하여 판단하기보다 감정적으로 반응하도록 하여 위험에서 벗어나 생존을 유지하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부분은 감각 중에 가장 빠르다. 또 자는 동안 예민해지는 게 후각이다. 자는 동안 집에서 불이 나면 불을 보고 깨는 사람은 없다. 냄새로 깨거나 뜨거워서 깬다. 평소에는 시각에 비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감각들이 자는 동안 예민하게 작동한다. 냄새가 안 날 때 편안하게 잘 수 있다. 처음에는 잠자기 좋은 냄새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잠을 깨게 하는 냄새가 된다."

편집국 부국장 jjcho@yeongnam.com

문제일 교수는

문제일(60) 교수는 디지스트 1호 교수이다. 디지스트가 학사부로 전환을 결정한 2009년 당시 가장 먼저 영입됐다. 후각 전문 뇌과학자이다. 현재 디지스트 대학원장이자 교육부 대학중점연구소지원사업의 지원을 받는 후각융합연구센터 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대구시와 함께 향기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향기산업 선진국 프랑스의 향 연구전문가도 문 교수와 국제협력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연세대 생화학과 출신으로 영국 런던 임페리얼칼리지에서 신경생물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으로 건너가 후각 분야에 천착했다. 경북대 치의학 전문대학원에서 신경과학 교수로도 활동했다. 뇌과학자가 된 동기가 재미있다. 초등학교 시절 외우는 게 싫어서 뇌과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문 교수는 "책 내용을 외우지 않고 필요할 때만 꺼내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게 뇌를 연구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암기를 싫어했지만, 고교 시절 공부를 잘했다. 문 교수는 "수학 문제 해설집을 달달 외웠다. 나름 수학 성적이 좋아 수학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산수를 잘하는 것이었다. 요즘 학생들에게 뇌를 기반으로 교육 이야기를 하는데, 그건 바로 나에 대한 참회록"이라고 웃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재미있는 뇌과학을 소개하는 책도 냈다. '달콤 쌉쌀한 생활밀착형 뇌과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나는 향기가 보여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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