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원시별, 6·25 격랑에 휩쓸린 스무살 동갑내기 세 남녀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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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16  |  수정 2023-06-16 08:00  |  발행일 2023-06-16 제15면
역사의 비극 응시 손석춘 작가

분단·이데올로기에 뒤엉킨 삶

사실적이고 속도감 있게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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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춘 작가가 정전 70주년을 맞아 펴낸 장편소설 '원시별'은 전쟁의 한복판에 놓인 세 청년을 통해 절망 속에 갇힌 꿈이 어떻게 어둠을 뚫고 빛을 이어가는지 그려낸다. 국군 장병들이 1950년 치열했던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재연하고 있다. 〈영남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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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춘 지음/철수와영희/412쪽/1만7천원

정전 70주년을 맞아 펴낸 손석춘의 장편소설이다. 손 작가는 2001년 첫 장편소설 '아름다운 집' 이후 끊임없이 역사의 아픔과 시대의 진실을 정면으로 응시해왔다. 항일 독립운동가 주세죽의 삶을 그린 장편소설 '코레예바의 눈물'은 이태준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 장편소설에는 전쟁의 한복판에 놓인 세 청년을 통해 어둠 속에 갇힌 꿈이 어떻게 밤을 뚫고 빛을 이어가는지 처연하게 그려낸다. 특히 분단과 이데올로기에 뒤엉킨 삶들을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듯 특유의 사실적이고 속도감 있는 문체로 그려낸다.

소설은 회피하고 싶은 비극적 역사를 오히려 품 안으로 끌고 들어와 더욱 속속들이 들추어낸다. 서투른 꿈과 갓 피우기 시작한 사랑을 전쟁의 격랑 속으로 파묻어야 했던 인물들은 이제 스물을 넘긴 청년들이다. 지금은 산책로쯤으로 알려진 연희동 궁동산 일대는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곳에서 벌어진 '연희고지 전투'는 6·25전쟁 당시 서울 탈환의 최전선이었다. 급박하게 전개되는 서사는 인간의 의지와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은 역사의 파도를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하지만 그 파도 속에서 세 명의 청년은 어둠 아래로 사라지면서도 결국에는 작은 빛 하나를 띄운다.

작가는 '언제나 삶은 이어진다'고 소설을 통해 말한다. 소설 속 인물이 꿈을 품은 청년들인 것도, 그 배경이 동네 바로 뒷산인 것도, 언제나 우리말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는 고집도 그러한 까닭일 것이다.

연희대학 철학과에 입학한 두 남자와 한 여자. 스무 살 동갑 세 청년은 사랑과 우정을 키워가며 각자의 철학을 정립해간다. 마르크스와 동학사상을 종합하려는 '진철'과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수철', 불교철학에 가치를 두고 있는 '지혜'는 각자의 사유를 통해 시대를 통과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들은 곧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면서 차례로 흩어진다.

수철은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주한미대사관에서 공보실 직원으로 일하게 된다. 북한의 남침 직후 주한미대사관이 일본으로 옮겨 가고, 수철은 거기서 미국 군 기관지 '성조지'의 종군기자로 파견되어 전함에 오르게 된다. 1950년 9월15일 개시된 인천상륙작전. 수철은 그 한가운데에서 불바다가 되어가는 월미도와 소월미도, 인천항을 차례로 목격한다.

한편 진철은 의열단 단원이었던 아버지 때문에 알게 된 약산 김원봉의 일을 돕는다. 좌우합작운동을 펼치며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던 약산은 수배자로 쫓기는 신세가 되고, 결국 진철은 약산과 함께 월북을 하게 된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각각 들어서게 되고, '로동신문' 기자로 있던 진철은 어느 날 인민군 제4사단과 함께 종군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1950년 6월25일 새벽 38선 야포의 함성이 터지면서 조선인민군은 한탄강 철교를 넘어 서울로 진입했다. 인민군 사단들이 연희대 문과대 건물(지금의 본관)을 사령부로 활용하면서 진철은 지혜와 짧은 만남을 가질 수 있었지만 곧 인민군을 따라 남하한다.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되면서 진철은 서울 방어전을 취재하기 위해 다시 지휘부가 자리한 연희대로 돌아온다.

이후 이 세 사람의 재회는 서울 수복을 위한 치열한 전투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만남은 결국 역사의 비극과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설레고 반가워야 할,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이들의 재회가 이루어진 장소는 연희동의 나지막한 능선, 어미산 중턱의 숲길, 이들이 이름 지은 '철학의 길'이 더 이상 아니었다. 포화 한가운데였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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