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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동시집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몰라'를 펴낸 안도현 시인. 〈안도현 시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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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글/이동근 그림/상상/116쪽/1만3천원 |
이번 동시집에는 모두 44편의 시가 실렸다. 고정된 틀을 벗어나 세상을 자유롭게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이 잘 담겨 있다. 소금이 바다에 있는 맷돌에서 나오는 줄 알았다는('염전에서') 아이들의 세상은 그 자체로 유쾌하다. 흩날리는 벚꽃잎을 돼지가 날아가는 모습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순수하기까지 하다.
"(전략)돼지가 날아간 거야/ 둥둥 구름처럼 떠서/떼를 지어서// 분홍 돼지가 날아가네// 아이가 혼자/ 소리치는 걸 들었다니까//(중략)// 벚꽃 구경 나온 사람들 틈에/ 설마 하던 일이 길을 건너/ 내 귀로 날아왔던 거야// 돼지가 날아가네"('돼지가 날아가네' 부분)
시인은 이번 동시집에서 인간 중심의 시선으로는 쉽게 닿을 수 없는 식물과 동물의 모습을 다채롭게 그린다. 그러면서 우리가 들을 수 없는 나무끼리의 말과 표정까지 읽어낸다.
"옆에 선 나무의 손을 잡지 않았는데/ 왜 나무와 나무는 친한 사이처럼 보이는지//(중략)// 조팝나무 가지 맨 끝에 앉아 흔들리는/ 딱새의 몸무게/ 딱새의 나이// 좋아하는 감정은 심장처럼 숨겨 두고 있어야 하는 걸까/ 입술 밖으로 꺼내서 내밀어야 하는 걸까"('궁리' 부분)
시인은 산속 동물을 인격화된 존재로 풀어내기도 한다. 고라니가 다니는 길목에 놓인 바위를 '고라니가 쉬어가는 의자'로 명명하며 고라니 역시 하루 일과를 마치고 거처로 돌아가다 발길을 멈춘 채 석양을 감상하는 인격체로 대한다.
"고라니가 사는 숲속// 서쪽 언덕에// 고라니가 앉았다 가는/ 의자가 있다// 고라니가 저녁마다 해지는 것을 보려고/ 엉덩이 대고 앉았다 가는 의자"('고라니 의자' 부분)
때로는 발랄한 어조로 은근한 익살과 유머로 읽는 재미를 준다.
"이웃집 고양이가 우리 집에 올 때는/ 아침부터 앞머리 드라이하느라 바빴을 거야/ 콧등에는 파운데이션, 입술에는 립스틱 바르고/ 쌍꺼풀 도드라지게 문신 새기고//(중략)// 레이스 장갑 끼고 수염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사부작사부작 우아하게 걸어왔을 거야"('이웃집 고양이' 부분)
시인은 특히 자연이 살아 있다는 것은 곧 자연이 사람과 동등하며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풀잎이 서로 말을 걸며 들판을 푸르게 물들이기도 하고('초록 풀잎 하나가'), 나무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그늘을 직접 펼쳐 주기도 한다('팽나무'). 혼자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는 자연의 구성원들은 서로 손을 잡고 커다란 전체를 이루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처럼 그려진다.
김제곤 아동문학평론가는 "안도현 시인은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풀잎의 말, 나무의 말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들려준다.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는 아이의 말을 고운 꽃씨를 두 손으로 받듯 받아 드는 시인은, 어린이의 말을 귀담아들을 줄 아는 예민한 귀를 가지고 있다"고 평했다.
안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세돌이 지난 외손녀 슬라는 아직 글을 읽지 못한다. 나중에 한글을 깨치고 나서 이 동시집을 들여다보다가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턱에 손을 괴고 한참을 생각해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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