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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렬 '초가집들을 보았을 때'. 소설가이면서 화가인 시인은 이번 시집에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들을 함께 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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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렬 지음/ 두엄/111쪽/1만3천원 |
'35년 만의 약속'.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펴낸 문형렬의 세 번째 시집이다. 소설가이기도 한 시인은 자신이 직접 쓴 발문을 통해 이번 시집이 나오게 된 사연을 담담하게 고백한다. 35년 동안 혼자 삼키고 되뇌었을 그 약속이 한 편의 시처럼 읽힌다.
"직장이었던 서문로 영남일보 옛 사옥 옆 '두엄'출판사가 있는 건물 2층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인혁당 무기수 나경일 선생을 아버지로 둔 후배 나문석 시인이 말갛게 탄 숯덩이 얼굴로 앉아있었다. 그때가 1988년 가을이었고 '두엄'이 막 문을 열었던 때였다. 나는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며 언젠가 베스트셀러 소설가가 되어 그에게 멋진 소설 원고를 주리라는 혼자만의 약속을 했다.(중략) 유신과 신군부 시절을 건너오며 희생되었던 많은 이들과 그 가족에게 어떤 책임이 있다는 것은 내게는 의무라기보다 구체적 사실이었다.(중략) 유행가 가사처럼 그러나 세월도 야속하고 운명도 야속해서 소설은 별로 팔리지 않았다. 오래전 김준성 선생이 생전에 '자네는 절대 전업작가를 해서는 안 된다. 마니아들만 좋아하는 소설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지만 어리석게도 기대를 버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선 로버트 프로스트처럼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잠들기 전에 더 가야 할 길처럼.
아침에는 눈 덮인 고원의 개여울에 나가 주저앉아 있고, 그림을 그리다 문득문득 나문석 시인에게 전화를 했지만 그의 전화는 수신이 중지되어 있었다. 서울로 돌아와서야 그를 만나 비로소 35년 동안 품었던 혼자만의 약속을 겸연쩍게 꺼내었다. 나는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약속을 지킬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염없이 했었다. 그는 정부에서 인혁당 조작 사건의 배상금을 너무 많이 지급했다고 원금과 밀린 이자를 내놓으라는 독촉에 힘들어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두엄'은 '혼자만의 약속'을 지키라는 듯 35년 동안 문을 닫지 않고 있었다."
시는 되레 소설처럼 읽힌다. 열여섯 살 때부터 쓴 54편의 시는 한 편 한 편이 서사다. 깊고 묵직한 서사들이 시어가 되어 무성한 뿌리처럼 뻗어 나온다. 시인이 감당해야 했던 짙은 그리움과 절규는 직설적이다. 세상을 먼저 떠난 누이에게 보내는 편지는 그래서 더욱 애절하다.
"네가 떠난 지 3년이 지났다 종이 한 장보다 얇은 시간을 구길 수 없으니 일년, 이년, 삼년……(중략)// 네가 떠났다는 소식을 전하지 못하다가 작년 봄 벚꽃 필 때 비로소 말씀드렸다 하염없이 다음날이면 까맣게 잊고 또 기다리던 어머니는 지난 1월 수줍게 웃으며 세상 밖으로 나가셨다(중략)// 아직도 시커먼 공장 일을 마치고 야간공민학교를 가던 네 뒷모습이 잘 보이지만, 이제 나도 덜 슬퍼할 줄 안다 어머니께 하고 싶은 말 다 하지 마라 이생에서야, 죽음이 있는 까닭은 어떻게 살아내어야 하는지 알려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없이 말하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은지야, 모든 이별은 금강석이겠지?" ('편지, 누이에게' 부분)
'흐느끼다 다음날이면 까맣게 잊고 또 기다리던 어머니'의 모습은 가슴 먹먹하다.
"안 온다고 해도 올 거라고/ 너는 잘못 알고 있다고/ 그럴 리 없다고// 바람 소리 들리면/ 나무 흔들리는 그림자에게도/ 나가서 문 열어주라고// 정말 그런가 싶어/ 문을 열면/ 여울물 소리만 와르르 안기네// 봄이 퍼뜩 와서/ 잎이 파릇파릇 해지도록/ 눈 내리는 산, 먼 가슴에 다 품어서// 못 온다고 해도/ 온다는 말 한마디 없어도/ 소리소리 문 열어보라고/ 따라 합창하는 여울물 노래처럼// 불 켜 두고/ 반짝반짝 문 열어두네/ 이제 기다리는 사람은 떠났고/ 돌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어머니 여울물 소리' 전문)
그러면서 시인은 가만히 독백한다. "다음 세상에는/ 니가 오빠 해라/ 이 슬픔 다 알도록"('은지야 은지야' 부분).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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