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락옹이 2024년 팔공산 제천단에 식수한 주목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04년 심은 주목들은 이제 군락을 이루고 있다. <김태락옹 제공>
"다시 태어난다 해도, 팔공산에서 태어나 팔공산에서 살고 싶습니다."
팔공산 자락에는 한평생을 산과 이웃을 위해 살아온 어른이 있다. 1938년생인 김태락 옹이다.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의 하루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평생 곁을 지켜준 아픈 아내를 정성껏 돌보고, 생업에 종사하며, 지역과 이웃을 위한 활동도 멈추지 않는다.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다부진 체격과 또렷한 눈빛에는 오랜 세월 팔공산이 길러낸 사람의 기운이 배어 있다.
그가 팔공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열다섯 살 무렵이다. 아버지를 따라 산에 들어와 생활을 시작한 이후, 무려 74년 동안 팔공산은 그의 삶의 터전이자 학교였다.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러 산을 오르내리는 일이 일상이었고, 먹을 것이 넉넉지 않아 굶주림을 견뎌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는 직접 산에서 캔 약초로 허기를 달래며 버텼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는 규칙적인 생활 속에서 몸과 마음을 단련해 왔다. "산에서는 부지런하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자연이 곧 스승이었지요." 그의 체력과 삶의 태도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김태락옹이 낸 회고록 '팔공산에 살어리랏다'. 강명주 시민기자
김옹은 팔공산의 역사와 가치를 지키는 일을 자신의 몫으로 여겼다. 소년 시절 팔공산에서 살며 제왕봉(帝王峰), 미타봉(彌陀峰), 삼성봉(三聖峰) 등 봉우리 이름을 어른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들으며 자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이 봉우리들이 비로봉·동봉·서봉으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는 본래의 이름이 아니라는 점에 문제의식을 가졌다.
이로 인해 그는 2016년부터 '팔공산 봉우리 이름 바로 부르기 운동'에 매진했다. 그에게 봉우리 이름을 바로 부르는 일은 단순한 명칭 회복이 아니라, 팔공산의 역사와 정체성을 되찾는 일이었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팔공산 정상에 올라 주목을 심고, 정상 보전 활동에도 꾸준히 힘을 쏟았다. 2004년에는 팔공산 천왕봉 제천단에 주목 25그루를 직접 심었다. 당시 나무는 나무젓가락 정도 굵기에 불과했지만, 세월이 흐르며 뿌리를 깊이 내렸고 이제 기둥만 할 정도로 성장해 제천단을 지키고 있다. 작은 실천 하나가 산의 풍경이 된 셈이다.
김옹은 주민들이 지역의 역사와 정신을 기억할 수 있도록 여러 기념비와 비석을 세우는 데 앞장섰다. 팔공산 천왕봉 제천단의 표지석을 비롯해, 공산삼선현현양비, 공산 3·1독립만세운동 8지사 기념비, 6·25전쟁 및 월남참전 507명 유공자 기념비, 공산 시비동산, 새마을지도자 현양비 등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그는 '사람은 떠나도 역사는 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라질 수 있는 기억들을 돌에 새겼다.
구순에 가까운 나이에도 그는 삶을 기록으로 남겼다. 89세에 컴퓨터로 직접 집필한 '팔공산에 살으리랏다'는 대필 없이 자신의 손으로 써 내려간 삶의 증언이다. 요란하지 않지만 묵묵히 이어져 온 그의 삶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강명주 시민기자 kmejuw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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