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지대] 차가운 숫자의 뜨거운 약속

  • 이진복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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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3-27 10:14  |  발행일 2026-03-30
이진복 공인회계사

이진복 공인회계사

부채는 단순하다. 갚아야 할 돈이다.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재무제표에서 부채는 의무이고, 책임이며, 관리해야 할 위험이다. 기업은 이미 발생한 거래 결과에 대해 빚을 지며, 빚을 갚지 못하면 제재가 가해진다. 이 설명은 기술적으로 정확하지만, 부채의 역동성을 담아내기에 충분하지 않다. 어딘지 공허하다. 부채는 단지 돈만을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 이면에 다른 서사가 있는가.


시장에서 종종 특이한 현상들이 목격된다. 같은 금액의 부채를 짊어지고도 어떤 기업은 견고한 신뢰를 얻어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데, 어떤 기업은 부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맥없이 무너진다. 만약 부채가 산술적인 숫자에 불과하다면, 이 차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부채가 단순한 숫자라면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금액이 아니라 그 숫자가 담고 있는 다른 무엇일지도 모른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독일어 Schuld라는 단어를 주목한다. 이 단어는 '부채'이면서 동시에 '죄'를 의미한다. 니체에게 이 두 의미의 중첩은 우연이 아니다. 두 의미는 단순히 겹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은 본래 망각하는 존재다. 망각은 생존을 위한 축복이지만, 미래에 대한 약속을 지속하기 어렵게 만드는 치명적인 결함이기도 하다. 사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의 장치를 만들어낸다. 바로 '잊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다. 그 결실이 채권과 채무 관계에서 나온 부채다. 부채는 그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약속을 잊지 않도록 바깥에 새겨 놓은 기억이다. 채무자는 약속을 지켜야 하는 존재가 되고, 이를 어기면 고통이나 처벌을 통해 그 사실이 각인된다. 이때 발생하는 것이 '죄'이다. 여기서 죄는 도덕적인 비난이라기보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결과에 가깝다.


니체의 주장을 기업에 적용해 보면 의미는 더 분명해진다. 기업이 부채를 인식한다는 것은 단순히 숫자를 기록하는 작업이 아니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현재에 붙잡아 두는 일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 약속을 잊지 않겠다'는 선언을 장부 위에 박제한 것이다. 그래서 부채가 기록하는 것은 금액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 이행되지 않은 약속이며, 그 약속은 반드시 이행되어야 한다는 책임의 가능성이다. 이때 책임은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는다. 약속이 존재하고, 시장에서 그 약속을 요구하는 순간 비로소 부채는 책임이라는 생명력을 얻는다.


이렇게 보면 회계의 역할도 달라진다. 회계는 단순히 과거를 정리하는 기술의 차원을 넘어 미래를 잊지 않기 위해 약속을 저장하는 기억의 장치에 가깝다. 부채를 지는 순간 기업은 더 이상 현재에 머무를 수 없다. 스스로 약속한 미래를 향해 움직여야 하는 존재가 된다. 물론 그 약속이 무너질 가능성은 언제나 따라붙는다. 신뢰 상실, 신용등급 하락, 파산 위험은 단순한 경제적 결과가 아니라, 약속이 깨졌을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재무제표에 적힌 부채는 차가운 숫자의 나열이 아니다. 그것은 기업이 사회와 맺고 있는 미래의 뜨거운 약속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지를 드러내는 가장 정직한 신호다. 결국 부채란, 기업이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해, 끝내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제 몸에 새겨둔 준엄한 기억이다. 그렇다면 좋은 기업이란 어떤 기업인가. 부채가 없는 기업도 좋지만, 자신의 약속인 부채를 창조적 힘으로 전환할 줄 아는 기업 또한 멋지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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