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 ‘쉽고 편한 길’의 위험

  • 정혜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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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8-26 14:19  |  수정 2026-08-27 09:25  |  발행일 2026-08-27
정혜진 변호사

정혜진 변호사

당연한 말이지만 변호사라고 법을 다 아는 건 아니다. 관련 법을 찾아보고 해석할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은 갖추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법 분야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당황스럽다. 다행스러운 건, 변호사의 일은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낯선 법률문제라도 어느 정도는 다룰 수 있다는 점이다. 일단 관련 법령을 확인해보고, 그 법의 체계를 숙지한 다음 관련 판례를 찾아보면 해당 분야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부분은 그 분야 권위자의 책이나 주석서를 찾아보고, 그런 사건을 많이 해본 아는 변호사를 찾아 물어보면 된다. 시간은 걸리지만 스스로 생각하면서 자료를 검토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에서 낯선 문제에 대한 문제 해결력이 자연스럽게 길러진다.


생성형 AI를 쓰게 되면서 이 과정은 놀랄 만큼 짧아졌다. AI 답변이 다 맞는 건 아니어서 검증은 꼭 거쳐야 했지만, 법령 및 판례 검색, 관련 책 찾아보기, 그 분야 전문 변호사에게 물어보기 등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질문 몇 개만으로 체계적으로 알 수 있으니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무료법률상담에서 모르는 분야를 만나도 AI 도움을 받아 어렵지 않게 설명하고 조언한 경험이 몇 번 쌓이다 보니 근거 없는 자신감까지 붙었다. 누가 어떤 법률 문제로 상담해 온다 해도 AI만 있으면 답을 다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자신감이 문제였을까. 얼마 전 AI를 과신했다가 결국 사달이 났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 처음으로 심의위원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심의 일주일 전 사안 자료를 받았는데, 처음 접하는 분야라 그런지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심의까지 남은 시간 동안 근거 법령과 판례를 찾아보며 답을 찾아가는 전통적인 방법도 있지만, 그 모든 걸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훨씬 쉽고 편한 길'이 있었다. 나는 별 문제의식 없이 사안 자료를 적절하게 편집한 파일을 AI에 넣고 검토의견서 작성을 요청했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AI가 해놓은 작업은 제법 그럴듯했다. 나는 그 의견서 달랑 들고 당당하게 심의에 갔다.


심의에서는 여러 위원들이 각자의 의견을 밝히며 토론한다. 나는 '출력해 간' AI 작성 의견서를 요약해서 의견은 밝힐 수 있었으나, 부끄럽게도 다른 위원들과의 토론에는 거의 끼지 못했다. AI의 의견서는 원론적인 이야기였을 뿐 이론과는 다른,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내용은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는 걸 현장에서야 깨달았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최대한 말을 아끼면서 간신히 심의를 마쳤다.


사무실로 돌아와 AI 답변을 다시 읽었다. 그제야 매끄러운 문장들 속에서 빈약한 핵심이 보였다. AI 잘못이 아니었다. 내 질문이 충분치 않았던 탓이었다. 그 분야를 전혀 모르면서 최소한의 조사도 하지 않았으니 애초에 좋은 질문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AI 시대에는 질문을 잘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질문을 잘하려면 관련 내용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모르면 질문의 수준을 평가할 수 없으니, 결국 검증도 제대로 할 수 없다.


결국 '편리한 유혹' 앞에서 생각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문제다. 중요한 건 내가 결과물을 얻기까지 얼마나 고민했는가 하는 점이다. '활용'해야 할 AI에 '의존'하게 되면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없을뿐더러, 그 결과물을 내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눈앞에 있는, 기가 막히게 멋진 도구의 유혹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AI 시대가 던지는 새로운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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