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누구를 위해 달렸나”...풍랑주의보에도 울릉 뱃길 지킨 울릉크루즈

  • 홍준기
  • |
  • 입력 2026-09-23 15:14  |  수정 2026-09-23 18:07  |  발행일 2026-09-23
쾌속선 사흘 결항에도 뉴씨다오펄호 운항
주민 14만4천480명 이용, ‘생활 뱃길’ 자리매김
울릉 뱃길 지킨 울릉크루즈 뉴씨다오펄호. 홍준기기자

울릉 뱃길 지킨 울릉크루즈 뉴씨다오펄호. 홍준기기자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5일 포항~울릉 항로의 분위기는 달랐다. 파도가 높아지면서 쾌속선은 운항을 멈췄지만, 영일만항에서는 밤 11시 출항을 앞둔 대형 카페리 뉴씨다오펄호의 운항 준비가 이어졌다. 같은 울릉도 뱃길이지만 배의 크기와 운항 기준에 따라 선택지가 갈린 것이다.


태풍의 간접 영향으로 강풍과 풍랑특보가 이어진 5~7일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포항~울릉을 오가는 쾌속선이 사흘간 운항 통제를 받은 가운데 뉴씨다오펄호는 정기 운항을 이어갔다. 지난 주말 울릉도에 머물던 관광객 가운데 6일 약 400명이 이 배를 타고 육지로 이동했고, 육지로 나가야 했던 주민들도 다음날 크루즈를 이용해 섬을 빠져나왔다.


바로 이 장면이 울릉크루즈가 지난 5년간 울릉도에서 해온 역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배이면서 동시에 기상 악화 때 육지와 섬을 잇는 마지막 선택지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23일 영남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울릉크루즈가 포항 영일만항과 울릉 사동항을 잇는 운항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21년 9월이다. 길이 170m, 총톤수 1만9천988t 규모의 뉴씨다오펄호는 여객 1천170명을 태울 수 있고 최대 1천250명이 승선할 수 있다. 소형차 기준 185대를 실을 수 있으며 객실 227개를 갖췄다. 밤에 출항해 선내에서 잠을 자며 이동할 수 있고 차량까지 실을 수 있다는 점도 기존 여객선과 달랐다.


취항 당시부터 주민들이 기대한 것은 속도가 아니었다. 높은 파도만 만나면 뱃길이 끊기던 생활에서 벗어나 육지와 안정적으로 오갈 수 있는 교통수단이었다. 당시 영남일보 취재에서도 울릉 주민들은 빠른 배보다 언제든 육지와 왕래할 수 있는 대형 여객선을 원한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이용객 수도 상당했다. 울릉군에 따르면 2022년 1월부터 2026년 9월22일까지 울릉크루즈(뉴씨다오펄호)를 이용한 입도·출도 총 인원은 198만6천761명에 이른다. 울릉읍 주민 김미영(48)씨는 "울릉도에서는 육지에 나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며 "병원에 가거나 육지에서 일을 봐야 할 때 배편이 끊기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울릉도 사동항에 도착한 대형 크루즈에서 승객들이 하선하고 있다. 홍준기기자

울릉도 사동항에 도착한 대형 크루즈에서 승객들이 하선하고 있다. 홍준기기자

풍랑이 거세질수록 이 같은 의미는 더욱 커진다. 관광객에게는 여행 일정의 문제일 수 있지만 주민에게는 병원 진료나 직장 복귀, 육지에서 처리해야 할 생업과 생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기상 악화 때도 크루즈가 운항하면서 울릉도에 발이 묶일 수 있었던 관광객과 주민들의 육지 이동 통로가 유지됐다.


응급환자 발생 때도 배의 역할은 드러났다. 지난 5월 포항을 출항한 뉴씨다오펄호에서 70대 여성 승객이 갑자기 쓰러지자 선사는 항해 중 포항으로 긴급 회항했다. 당시 승객은 1천88명이었고 입항은 예정시간보다 약 4시간 늦어졌지만, 환자는 포항에서 대기 중이던 119구급대에 인계됐다. 이후 선박은 다시 울릉도로 출항했다.


관광객 증가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울릉도 관광객은 2021년 27만1천901명으로 전년보다 54% 증가했다. 다만 이 같은 증가를 울릉크루즈 취항만의 결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코로나19 이후 관광시장 회복과 각종 관광정책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했기 때문이다.


울릉크루즈는 관광객뿐 아니라 겨울철 울릉도의 생활과 관광에도 영향을 미쳤다. KTX 등 육지 철도교통과 크루즈를 연결한 '레일쉽' 상품이 운영되는 등 울릉도 접근 방식도 다양해졌다. 그러나 과제도 남아 있다. 풍랑주의보 때에도 운항할 수 있는 대형 카페리가 있다고 해서 울릉도의 해상교통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운임 부담을 낮추고 사동항 등 항만시설을 개선하는 한편, 섬 안의 도로와 대중교통 등 육상교통망도 함께 갖춰야 한다.


특히 최근 기상 악화 때 확인된 것은 대형 카페리 한 척의 존재가 울릉도 주민들에게 단순한 '배 한 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다. 쾌속선이 멈춰 선 바다에서 이 배가 운항하느냐에 따라 주민의 육지 이동과 관광객의 귀환 여부가 달라졌다.


울릉크루즈 취항 5년. 처음 이 배를 기다렸던 주민들이 원했던 것은 빠른 배가 아니었다. 풍랑이 몰아쳐도 육지와 연결될 수 있는 길이었다. 지난 5년간 뉴씨다오펄호가 실어 나른 것은 관광객만이 아니었다. 병원에 가야 하는 주민, 육지로 출근하거나 일을 보러 가야 하는 사람, 차량을 옮겨야 하는 주민, 기상이 풀리기를 기다리던 관광객까지 함께 태웠다.


결국 울릉크루즈가 풍랑 속에서도 지켜온 뱃길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관광객을 위한 배이기 전에, 바다가 길을 막았을 때에도 육지와 섬을 이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생활의 길이었다.



기자 이미지

홍준기

발로 뛰는 현장 취재와 심층 기획으로 울릉도와 독도의 가치를 기록하겠습니다.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