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정 대구대문화콘텐츠학부교수
2015년 미국에서 개봉한 '인턴'이 2026년 9월 16일 한국판 리메이크로 극장에 돌아와 개봉 직후부터 박스오피스 선두에 오르며 관객의 관심을 끌고 있다. 로버트 드 니로와 앤 해서웨이가 맡았던 벤과 줄스의 역할은 최민식과 한소희로 교체되었고, 배경은 뉴욕 브루클린에서 한국의 패션 스타트업으로 옮겨졌다.
두 영화의 기본 구조는 같다. 70세 전후의 은퇴 남성이 '시니어 인턴'으로 젊은 여성 CEO가 이끄는 스타트업에 들어가고, 서로 다른 세대의 두 사람이 관계를 만들어간다. 원작의 벤(로버트 드 니로)과 한국판의 기호(최민식)는 모두 오래 일한 뒤 은퇴했고, 다시 가장 낮은 자리인 '인턴'으로 조직에 들어온다. 하지만 2015년 원작이 던졌던 질문과 2026년 한국판이 마주한 현실은 같지 않다.
우선, 2015년은 스마트폰과 모바일 인터넷, 이커머스와 스타트업이 기존의 산업과 소비방식을 빠르게 바꾸던 시기였다. 영화 속 회사 '어바웃 더 핏'은 그 시대의 속도를 압축한 공간이다. 온라인 주문은 실시간으로 들어오고, 고객의 반응에는 즉각 대응해야 하며, 회사는 쉼 없이 성장한다. 줄스가 회사 안에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은 이 새로운 경제의 시간을 상징한다. 이처럼 줄스는 속도의 인간이다. 더 빨리 움직이고, 더 빨리 판단하며, 더 빨리 성장해야 하는 시대를 대표한다. 반대로 벤은 시간의 인간이다. 그는 먼저 보고, 듣고, 기다린다. 줄스의 속도가 회사를 성장시킨다면 벤의 시간은 그 과정에서 놓치기 쉬운 사람과 관계를 다시 보게 한다. 그래서 두 사람의 만남은 단순한 세대의 만남이 아니다. 속도의 시간과 축적의 시간이 만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인턴이 말하는 '경험'의 의미도 달라진다. 경험은 오래 일했다는 사실이나 과거의 지식을 많이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오래된 지식의 축적이라기보다 시간을 통과하면서 형성된 판단의 깊이에 가깝다.
11년 뒤 한국판은 이 질문을 다시 꺼낸다. 37년의 직장생활을 마친 기호는 자신의 장점은 경험이 많다는 것이고, 단점은 나이가 많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역설적인 대사는 오늘날 경험이 놓인 자리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경력을 요구하면서도 오래된 경력을 변화의 장애물로 의심한다. 더구나 2026년은 AI와 자동화가 인간의 지식과 숙련 자체를 빠르게 재편하는 시대다. 한국판 인턴은 이러한 변화를 한국의 직장문화 속에 옮겨놓는다. 세대 차이와 불안, 고립의 문제를 더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원작이 성공한 여성 CEO가 가정과 직업 사이에서 겪는 갈등을 통해 '일과 가정의 균형'을 다뤘다면, 한국판은 그 지점을 보다 한국적인 현실로 옮겨 딩크족, 저출산, 결혼과 독립의 문제를 중심에 놓았다. 이는 단순한 현지화라기보다 2026년 한국사회에서 여성 리더와 시니어 세대가 놓인 조건을 새롭게 번역한 결과다.
지금 AI 시대에는 오래 일했다는 사실만으로 경험의 가치를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아느냐보다 언제 속도를 늦추고, 언제 기다리며,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두 영화가 공통적으로 되살리는 경험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기술이 시간을 압축할수록, 인간에게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이유도 결국 이러한 판단과 태도를 형성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원작은 그 답을 의외로 작은 물건 하나에 담아낸다. 벤의 손수건이다. 벤은 요즘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손수건을 늘 가지고 다닌다. 젊은 동료가 이유를 묻자 그는 자신이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 필요로 할 때 건네주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영화의 여러 장면에서 보이는 손수건은 단순한 '구식' 소품이 아니다. 벤이 오랜 시간 동안 체득한 경험이 '기능'이나 '지식'이 아니라 배려와 절제, 공감과 경청의 '태도'로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인 것이다. 원작이 발견한 '오래된 인간'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런 점에서 2026년 한국판에서 원작의 손수건 에피소드가 사라진 것은 몹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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