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 시인
점점 시늉이 는다
자는 시늉
안 자는 시늉
받아본 적 있는 사람이 줄 수도 있다는 말을
믿는 시늉
던지는 시늉
받는 시늉
하다 보면 공을
받지 않아도 줄 수 있다
심지어 공이 없어도
(중략)
밤의 공원에는
답장을 기다리는 사람의 환한 얼굴이 나무에 매달려 있다
그런 사람은 많다
그 많은
신발을 강물 위에 벗어주고
천변을 따라 줄지어 걸어가는 사람들
나도 공을 품에 안고
맨 뒤에 따라붙어 걷기 시작한다
#
세상의 전부를 그리고 싶은 화가가 있다고 치자. 세상을 다 그린 그는 그림 속에 세상을 그리는 자신이 빠졌다는 것을 알고는 자신을 그려넣는다. 세상을 그리는 자신을 다 그린 그는 세상을 그리는 자신이 그려진 그림을 그리는 자신이 빠졌다는 것을 알고 다시 자신을 그려넣는다. 그렇게 반복되는 그림에서 세상은 화폭의 소실점으로 끝없이 멀어지고 여전히 되풀이 그려지는 자신의 모습만이 계속된다. 나는 그런 시를 많이 보았다. 자신이 쓰는 시에 대한 이야기가 시를 쓰는 자신의 이야기로 꼬리를 물며 시의 신비 속에 자신의 신비를 겹쳐놓는 시. 그저 시를 쓰는 시늉으로 주지도 않는 '공'을 받으려는 시인을 말이다. 그리고 그 빤한 욕망을 찢고 아무렇지도 않게 받지도 않은 '공'을 건네주는 이런 시를 만난다.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신발을 강물 위에 벗어주고 천변을 따라 줄지어 걸어가는 사람들'의 '맨 뒤'를 따라 걷는 시인을 말이다. 시의 답장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상] 울릉공항, 드론으로 미리 보는 이착륙 현장](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609/news-m.v1.20260923.2c4cf16d7cf34b9ca82925ef313ec1d8_P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