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서] 8월의 달력, 우리가 채워야 할 빈자리

  • 우대현 광복회 대구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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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9-30 17:02  |  수정 2026-09-30 19:12  |  발행일 2026-10-02
우대현 광복회 대구시지부장

우대현 광복회 대구시지부장

8월의 달력은 우리에게 유난히 많은 감회를 안겨 준다. 나라를 되찾은 환희가 있는가 하면 국권을 빼앗긴 치욕이 있고, 식민지배의 폭력 속에서 인간의 존엄이 유린당한 아픔도 있다. 8월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8월15일 제81주년 광복절, 그리고 8월 29일 경술국치일이 보름 남짓한 시간에 이어진다.


세 날은 서로 다른 역사적 사건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 속에는 하나의 공통된 물음이 담겨 있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얼마나 온전히 기억하고 있으며, 그 기억을 통해 오늘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지켜 나갈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1991년 8월14일, 고(故) 김학순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생존자 가운데 처음으로 공개 증언했다. 수십 년 동안 침묵 속에 묻혀 있던 한 여성의 고통이 세상 밖으로 나온 순간이었다. 한 사람의 용기는 역사의 침묵을 깨웠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우리 민족만의 아픔이 아닌 인류 보편의 인권 문제로 드러내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일상에서 8월14일은 얼마나 제대로 기억되고 있는가.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어 있음에도 일반 달력에서 이날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피해자의 용기와 아픔을 기리는 날조차 우리의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있다면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8월15일은 광복절이다. 올해로 광복 81주년을 맞는다. 그러나 광복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선물이 아니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선열과 독립운동가들의 희생, 이름 없이 쓰러져 간 민초들의 저항과 국내외에서 이어진 끈질긴 항일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독립운동은 일부 영웅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나라를 잃고도 나라를 포기하지 않았던 우리 민족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8월29일은 경술국치일이다. 1910년 이날, 대한제국은 일제에 의해 국권을 강제로 빼앗겼다. 나라를 잃는다는 것은 영토와 정부만을 빼앗기는 일이 아니었다. 민족의 언어와 역사, 문화와 이름, 인간으로서의 존엄까지 위협받는 일이었다. 그 시대를 기억하는 것은 과거의 상처에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시는 그러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경술국치일 역시 일반 달력에서 아무런 표식을 찾아보기 어렵다. 광복절은 붉은 글씨로 기억하면서도 나라를 빼앗긴 날은 달력의 빈칸으로 남겨 두고 있다. 영광의 역사만 기억하고 치욕과 아픔의 역사를 외면한다면 우리의 역사 인식은 온전할 수 없다.


8월14일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기억의 날이고, 8월15일은 빼앗긴 주권을 되찾은 환희의 날이며, 8월29일은 나라를 잃은 민족의 뼈아픈 교훈을 되새기는 날이다.


세 날은 서로 다른 표정을 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광복 81주년의 8월을 보내며 우리의 달력을 다시 바라본다. 그곳에는 기념해야 할 영광의 날이 있고,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아픔의 날도 있다. 기쁜 날에는 함께 기뻐하고, 슬픈 날에는 함께 기억할 줄 아는 사회, 그것이 성숙한 역사의식을 가진 사회일 것이다.


8월의 달력에 남겨진 빈칸은 단순한 날짜의 공백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채워야 할 역사의 빈자리다. 그 빈자리를 기억으로 채우는 일, 그것이 광복 81주년을 살아가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선열과 역사의 상처를 견뎌 낸 고통받은 자들에게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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