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천일영화] 달은 모두에게 공평한가, ‘가능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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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10-01 13:47  |  발행일 2026-10-02
윤성은 영화평론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이창동 감독의 영화들은 한 인간의 지독한 고통을 스크린에 오롯이 새겨보려는 치열한 고민의 산물이었다. '박하사탕'(1999)은 역사가 개인에게 가한 폭력과 트라우마를 응시하고, '오아시스'(2002)는 사회가 동정 혹은 혐오하는 소외된 사람들의 사랑을 다뤘으며, '밀양'(2007)은 비극적 운명에 처한 인간을 통해 신의 침묵과 구원의 가능성을, '시'(2010)는 참혹한 현실과 예술(행위)의 의미를 묻는 작품이었다. 신작 '가능한 사랑'에서 이창동 감독은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그들을 카메라에 담는 다큐멘터리스트의 내면으로 들어간다. '버닝'(2018)의 '벤'(스티븐 연)과 친구들이 '해미'(전종서)를 대하던 미묘한 시선은 이 작품에 와서 훨씬 성숙해졌다. 그러나 과연 이들은 영화의 제목처럼,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라는 공적인 관계를 넘어 사적인 친밀감 혹은 유대감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그동안의 작업에 대한 이창동 감독의 성찰적 태도를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몇 년 전 SP 중공업에서 해직된 '호석'(설경구)과 그의 아내 '미옥'(전도연)은 여전히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이들은 자살한 회사 후배의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미옥은 검은 옷이 없어 무늬 있는 옷을 입었는데 이상해 보일 것 같다고 말하고, 호석은 그런 그녀에게 울어도 된다고 대꾸한다. 하지만 심리 상담도 거부하고, 장례식장에도 한참을 머뭇거리다 들어갈 만큼 감정을 들키기 싫어하는 것은 호석 자신이다. 그런데 여기에 '예지'(조여정)의 카메라가 끼어든다. 호석은 자신의 치부를 기록하려는 듯한 그 카메라가 영 달갑지 않다. 여기서 미옥과 호석은 해직 노동자이기 이전에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그 계급이 드러난다. 예지의 남편 '상우'(조인성)처럼 프라이빗 비치에서 발가벗고 수영을 즐길 수 있는 '자유'가 이들에게는 허락된 적이 없다. 장례식 이후, 예지가 미옥을 인터뷰하기 시작하면서 두 부부는 물리적으로 사뭇 가까워진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는 화려한 세상이 굴러가도록 떠받치고 있는 노동자들이나 스마트폰으로 검색된 핸드백의 가격처럼, 보이지도 않고 좁혀지지도 않는 심리적 간극이 끝까지 존재한다.


시선의 관점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다큐멘터리스트인 예지다. 예지는 다큐의 힘이 사람에게 있다고 믿으며 미옥 부부를 대접하고 위로하려 한다. 설사 그것이 상우의 표현처럼 메소드 연기라 하더라도 그 무해한 노력에 대해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는 은근슬쩍 자신을 미옥 부부와 평행선상에 놓는 오류를 범하고 만다. 처음부터 상우와 자신은 다른 계급에 있다고 소개하고, 20대 초반에 봉제 공장에 다니던 미옥이 바라보던 달과 자신이 시카고에서 의지했던 달이 같은 달이었다고 말하는 데서 예지의 오만함은 잘 드러난다. 그녀는 자신도 이들과 유사한 체험을 했고, 달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만큼 스스로 미옥 부부와 같은 선상에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이들 나이만큼의 경험치를 극복할 수 있는 진심은 없다.


그래서 '가능한 사랑'이란, 인간이라는 존재와 예술의 (불)가능성을 동시에 겨냥한 일종의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종종 네 사람을 관찰하는 미옥 부부의 아들 '철'의 시선을 좇아간다. 아직 어린 그의 눈은 카메라처럼 어른들의 행위를 포착하지만, 그 아래에 흐르는 기의(signifié)를 모두 읽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개인이 온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는 그 사적인 영역까지 탐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 이것이 '가능한 사랑'이 도달한 윤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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