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원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문학평론가
정신분석가 프로이트는 '꿈'을 '무의식의 무대'라고 설명했다. 저 표현은 무의식과 꿈이 동일한 것이 아니며, 꿈이 무의식을 토대로 연출된 연극임을 뜻한다. 프로이트는 그 연출의 과정을 '꿈작업'이라 불렀고 그것이 '응축'과 '전치'라는 방법을 자주 취한다고 했다. 이때 응축은 비유하자면 일종의 압축파일 같은 것이다. 압축파일을 풀면 여러 개의 문서가 나오듯이 꿈에 나온 하나의 이미지나 장면에는 여러 개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지난여름 나홍진 감독의 '호프'가 화제였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파출소에서 느닷없이 소가 등장했던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괴생명체와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난 뒤 파출소로 돌아온 인물이 어수선한 그곳에 '소'가 돌아다니는 장면을 보고 웬 소가 여기에 있냐고 반문하는 장면 말이다. 생뚱맞고 우스꽝스러운 그 장면의 소는 앞서 언급한 응축된 이미지에 가깝다. 무슨 말인가. 우선 소가 일으키는 웃음. 그것이 폭'소'든 실'소'든, 이 웃음을 의미하는 '소(笑)'가 저 동물 소(牛)의 형상 속에 작동한다. 일종의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감독이 의식했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맥락은 작품 전체 서사적 차원과 관련한다. 이 영화는 우리의 근대가 얼마나 많은 파괴와 폭력의 시간이었는가를 환기한다.
극 중에 마을 사람들이 사용한 무기들은 그곳이 분단으로 형성된 휴전선 접경지대라는 상황에서 개연성을 얻는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는 6·25 참상의 역사 그림자까지 어른거리고 있는 셈이다. 또한 마을에서 벌어진 외계생명체와의 전투에서 나동그라져 있던 각종 기계와 철제들 그리고 구멍 난 부동산 간판을 포함해 각종 상점들이 난삽하게 파괴된 모양은 본격적인 산업화와 자본화를 겪는 과정이 얼마나 전쟁 같았는지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리고 문제의 '소'가 있다. 소는 농경사회에서 산업화사회로 옮겨오는 동안 우리가 상실한 세계의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까 나홍진 영화에서 소가 울 때 그것은 근대화 과정에서 대도시의 식민지처럼 기능한 농촌의 울음과 다르지 않다. 말이 나온 김에 나홍진의 전작 '곡성'에 등장하는 여귀(女鬼)는 군복을 입고 있는데 이는 고향에서 쫓기듯 도시의 공장으로 가 '산업역군'으로 불리며 과잉노동과 착취에 시달린 영혼들의 비통을 환기한다. 또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비명을 내지르던 여자아이의 책꽂이에 꽂혀 있던 책 중 하나가 농촌을 떠나 식모살이를 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봉순이 언니'라는 점 역시 의미심장하다. 나홍진은 새벽녘 시골의 고샅에 여귀를 세워둔 장면을 연출하며 딱 그 시간대 그 길을 따라 도시로 빠져나간 여성들의 삶이 처했을 곤경과 아픔을 떠올렸을 것 같다. 그러니까 호프의 '소'나 곡성의 '여귀'나 모두 농촌이란 삶의 터전을 박탈당한 채 도시를 떠돈 영혼들을 애도하는 상징물일 가능성이 크다.
어느 소설에선가 촌에서 유년을 보내고 도시로 올라와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어 다시 고향을 찾은 인물이 해의 기울기와 공기의 질감만으로 시간을 정확히 맞추며 어째서 이런 감각은 평생 사라지지 않는 것인가를 되묻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자신도 잊고 있던 어떤 세계의 시계가 여전히 작동 중이며 그 세계에는 우리가 복잡한 마음으로 회피한 어떤 문제와 진실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변형된 모습을 하고 언젠가 우리의 삶으로 반드시 돌아와 우리가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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