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천고마비의 계절에 웬 비만약

  • 문제일
  • |
  • 입력 2026-10-08 17:55  |  발행일 2026-10-09
천고마비의 계절에 웬 비만약
문제일 디지스트 뇌과학과 교수

문제일 디지스트 뇌과학과 교수

10월입니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죠. 선선한 바람이 불면 우리 뇌도 긴 겨울을 준비하라는 몸속 시계의 신호에 따라 슬그머니 식욕을 끌어올립니다. 그런데 이 풍성한 가을에 세계의 눈길은 거꾸로 '살 빼는 약' 위고비(Wegovy)에 쏠렸습니다. 위고비의 뿌리가 된 연구자들이 올해 노벨상 유력 후보로 꼽혔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난 5일 발표된 노벨 생리의학상은 예상과 달리 광유전학(光遺傳學)을 개척한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칼 다이서로스(Karl Deisseroth), 독일 훔볼트대학교 페터 헤게만(Peter Hegemann), 뷔르츠부르크대학교 게오르크 나겔(Georg Nagel) 교수에게 돌아갔습니다.


광유전학은 빛에 반응하는 단백질을 원하는 신경세포에만 심어, 빛을 비출 때마다 그 세포를 전등 스위치처럼 켜고 끄는 기술입니다. 헤게만 교수와 나겔 교수는 2000년대 초 녹조류에서 빛을 받으면 열리는 통로 단백질(채널로돕신)을 찾아냈고, 다이서로스 교수는 2005년 이를 포유류 신경세포에 넣어 빛으로 조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2021년에는 시력을 잃은 망막색소변성증 환자의 눈에 이 기술을 적용해 사물을 일부 알아보게 했다는 결과가 '네이처 메디신'에 실렸고, 파킨슨병과 우울증 치료에 응용하려는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비록 위고비는 올해 노벨위원회의 선택을 받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내년 노벨상 유력 후보로 언급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위고비 이전에도 뇌과학으로 식욕을 다스리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향기박사가 2000년대 초 미국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에서 연구하던 시절, 학계를 뜨겁게 달군 'C75'라는 신약 후보 물질이 있었습니다. 연구를 이끈 가브리엘 로넷(Gabriele Ronnett) 교수님은 생화학 박사이자 신경과 의사인 의사과학자(MD-PhD)였는데, 몸에서 지방을 만드는 효소(FAS·지방산 합성효소)가 뇌 신경세포에도 유난히 많다는 점을 궁금하게 여겼습니다. 지방을 쌓아두는 곳도 아닌 뇌에 왜 '지방 공장'이 이렇게 많을까 하는 물음이었죠. 환자를 돌보면서도 기초과학의 궁금증을 놓지 않았기에 던질 수 있었던 질문이었습니다.


뇌 한가운데 자리한 '시상하부'는 온몸의 에너지 상태를 24시간 지켜보는 관제탑입니다. 우리가 밥을 먹으면 세포는 FAS를 돌려 남는 영양을 지방으로 바꿔 둡니다. 그런데 C75가 이 효소를 막자, 요금소가 닫힌 고속도로에 차들이 늘어서듯 지방이 되기 직전의 재료(말로닐-CoA)가 신경세포 안에 잔뜩 쌓였습니다. 시상하부는 이것을 "에너지 창고가 넘친다"는 신호로 읽고 배고픔을 부르는 물질(NPY, 신경펩타이드Y)을 줄였습니다. C75를 맞은 쥐는 먹는 양이 90% 넘게 줄었고, 식욕을 눌러주는 호르몬 렙틴(Leptin)의 도움 없이도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비만인 사람은 렙틴이 충분해도 뇌가 그 신호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렙틴 저항성)가 많기에, 이 결과는 2000년 '사이언스'에 실려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C75는 부작용이 커서 약이 되지는 못했지만, 빠르게 자라는 암세포를 굶기는 항암제 연구로 길을 텄고, 무엇보다 식욕이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라 세포 속 에너지 계산에 따른 뇌의 반응임을 또렷이 보여주었습니다.


위고비의 성공도 이렇게 쌓인 연구 위에서 맺은 열매입니다.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는 효소를 막는 대신, 밥을 먹은 뒤 장에서 나오는 포만감 호르몬(GLP-1)을 흉내 냅니다. 이 호르몬이 뇌간과 시상하부에 신호를 보내면 배부른 느낌이 오래가고, 맛있는 음식 앞에서 들뜨는 보상 회로(즐거움을 느끼는 신경 회로)도 차분해진다고 합니다. 방법은 달라도 몸의 에너지 상태와 뇌가 한 축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꿰뚫어 본 셈입니다.


그러니 살찐 사람에게 "의지가 약하다"고 탓하기 전에, 그 뒤에서 뇌와 몸이 주고받는 복잡한 대화를 한 번쯤 떠올려 보시기를 제언해 봅니다. 또 과학은 이어달리기입니다. 녹조류가 빛을 쫓는 원리를 묻던 호기심이 노벨상으로 이어졌듯, 당장 성과가 없어 보이는 기초과학이 수십 년 뒤 누군가의 삶을 바꿉니다. 우리 사회도 아이들의 호기심을 칭찬하며 넉넉히 기다려 주면 어떨까요?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