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복 정경세의 ‘우산팔경’ 품은 상주 이촌리…주민 손으로 산림정원 가꿔

  • 구경모(세종)
  • |
  • 입력 2026-10-11 17:54  |  발행일 2026-10-11
영남일보·한국귀농귀촌치유산업진흥원 공동기획
동양의 스위스 대구·경북 정원도시 프로젝트 ⑩·끝
“꽃밭에서 찾는 마을의 생존 전략”…상주시 외서면 이촌리의 도전
우복선생이 극찬한 우산팔경 중 6경인 경북 상주시 우산동천(愚山洞天) 이촌리의 구름바다의 전경.  이촌리 제공

우복선생이 극찬한 우산팔경 중 6경인 경북 상주시 우산동천(愚山洞天) 이촌리의 구름바다의 전경. 이촌리 제공

심각해지는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 '정원과 산림'이 새로운 생존 돌파구로 떠오르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경북의 깎아지른 듯한 산세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지닌 산속 마을들을 단지 '쉬어가는 곳'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를 정원형 6차 산업으로 발전시켜 관광 소득을 창출하는 명품 거점으로 조성해 지역의 자생력을 확보해야 한다. 경북도와 민간에서도 여기에 주목하고 이미 행동에 나선 상태였다.


영남일보 취재진은 지난달 4일 경북 상주시 외서면 이촌리의 '명품 산촌 마을' 도전 현장을 찾아 지역을 살리기 위한 민관의 열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취재진이 찾은 곳은 퇴계 학파의 정통계승자인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1563~1633)의 고향이다. 정경세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어받은 서애 류성룡의 수제자다. 이촌리, 우산리 일대는 그의 사상과 손길이 묻어 있는 유서 깊은 고장이다.


노동욱 상주시 이촌리 이장이 이촌리 주민들과 가꾸고 있는 호스타 군식장에서 잡초를 제거하고 있다.  구경모 기자

노동욱 상주시 이촌리 이장이 이촌리 주민들과 가꾸고 있는 호스타 군식장에서 잡초를 제거하고 있다. 구경모 기자

현장에서 만난 노동욱 이촌리 마을 이장은 "우복 선생은 1600년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이촌리 일대에 내려와 '우산동천(愚山洞天)'이라는 이상적인 산림철학과 정신으로 우산팔경(遇山八景)을 조성했다"며 "우산팔경 중 3개가 이촌리의 계곡(이안천)과 커다란 암석, 포근한 산림(큰불당골)이다. 우복의 자연사랑 정신은 존애원이나 낙풍계(樂風契)로 세상에 알려졌다"고 했다.


그로부터 400여년이 지난 지금. 이촌리 마을 사람들은 우복 선생의 뜻을 잇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노 이장은 "이촌리는 속리산 동쪽의 전형적인 산촌"이라며 "젊은 사람들은 떠나고 마을이 빠르게 늙어가는 것을 보며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다고 40~50대 청년들이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산촌이 살아남으려면 단순한 농업을 넘어 사람들이 찾아오게 할 이유를 고민했다고 한다.


노 이장은 "수많은 토론 속에 이촌리가 가진 풍부한 산림 자원과 우산팔경의 역사성을 건강과 치유로 정의한 뒤 사계절 꽃이 피는 산림정원 마을을 조성하면, 마을에 다시 활력이 돌고 주민들의 삶의 질도 높아질 것이라 확신했다"고 전했다.


관에서도 힘을 보태고 있었다. 상주시와 경북도에서는 우복이 칭송한 이촌리 경관을 주목해 2012년부터 2015년까지 3년 동안 우산팔경을 조망할 수 있도록 이촌리에 임도 4㎞를 개설해 주었다.


그는 "마을 주민들과 마음을 모아 앞으로 10년 동안 10㏊ 규모의 대단지 정원 조성을 계획 중"이라며 "서울에서 주말마다 산에 내려오는 산주와 협의해 이미 2011년 우북산 정원 조성계획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경북 상주시 이촌리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정원 조성에 나서고 있다.  구경모 기자

경북 상주시 이촌리 마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정원 조성에 나서고 있다. 구경모 기자

실제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노 이장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은 들국화나 구절초, 보랏빛 청아함을 자랑하는 청화쑥부쟁이를 한뼘 한뼘 심어가고 있었다. 노 이장은 "주민들이 직접 장마철이면 수국 삽목을 해 가꾸고 잡초를 뽑으며 정원을 일구기 시작했다"며 "가을이 되면 우북산 몇몇 거점에 흰 구절초와 보랏빛 청화쑥부쟁이가 장관을 이룬다. 이 정원을 중심으로 지역 축제를 열고 산촌 체험 프로그램을 연계해 주민들의 실질적인 관광 소득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당장의 목표는 경북도의 '명품 산촌 마을'로 선정되는 것이다. 노이장은 "이촌리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산촌'으로 만들고 싶다"며 "방문객들이 꽃길을 걸으며 쉬어가고, 지역 농특산물도 구매하며, 주민들은 정원 관리를 통해 소득과 일자리를 얻는 선순환 구조를 완성하겠다"고 강조했다.


경북도 역시 이촌리와 같은 산촌마을의 자발적인 움직임에 긍정적이었다. 경북도 김인한 정원팀장은 영남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상주 이촌리는 우복 선생의 자연사랑과 사람 사랑 정신을 정원으로 구현하려는 선도마을"이라며 "구절초·아스타 쑥부쟁이 단지 사례처럼,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정원 조성은 매우 이상적인 모델이다. 도는 이처럼 주민 열정이 높고 발전 가능성이 큰 산촌을 '명품 산촌'으로 지정해 육성함으로써, 도내 여러 산촌으로 확산 가능한 성공 모델을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면적의 70% 이상이 산림으로 이루어진 경북을 정원문화와 결합해 휴양·치유·관광이 어우러지는 복합 공간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김 팀장은 "정원 조성 사업은 단순한 환경 개선이 아니라, 인구 유입을 유도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지방소멸 대응의 강력한 카드가 될 수 있다"며 "시·군과 협력해 권역별 특화 정원을 조성하고, 민간 정원의 발굴과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원이 지역의 관광 인프라와 결합해 지역 소멸을 막고 주민 소득을 창출하는 효자 산업이 되도록 정책적·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았다. 농림축산식품부 <사> 한국귀농귀촌치유산업진흥원(이하 진흥원)은 △전담 행정 조직 및 전담 인력의 획기적 확충 필요 △민간 정원 발굴 및 활성화를 위한 도 차원의 적극적 지원 △지역 소멸 방지 및 관광 소득 창출을 위한 '정원 산업화' 집중 등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경북 상주시 이촌리 마을 주민들이 조성 중인 정원에 하늘색과 청보라색의 수국이 피어있다.  구경모 기자

경북 상주시 이촌리 마을 주민들이 조성 중인 정원에 하늘색과 청보라색의 수국이 피어있다. 구경모 기자

유상오 진흥원 원장은 "현재 경북도 내 22개 시·군 중 정원 전담 조직을 갖춘 곳은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며 "정원 정책이 일회성 사업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지역 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각 시·군별 전담 조직 신설 및 전문 인력 배치가 시급하다"고 분석했다.


관 중심의 공공정원 조성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유 원장은 "지역 주민과 민간 사업자가 스스로 정원을 가꾸고 개방할 수 있도록, 경북도 차원의 민간 정원 지정 확대, 컨설팅 제공, 유지 관리비 지원 등 과감한 민간 정원 육성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역별 특화 전략도 필요하다. 유 원장은 "경북의 다양한 지형과 기후, 문화 자원을 고려한 권역별 특화 전략이 필요하다"며 "상주 이촌리의 산촌·약초 정원처럼, 해안권·내륙권·산악권 등 각 권역의 독자적인 수종과 테마를 살린 차별화된 정원 모델을 개발해 상호 시너지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원 조성을 전략산업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대목도 주목된다. 유 원장은 "정원 조성을 단순한 환경 정비나 미관 개선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정원을 지역 관광 체계, 농특산물 판매, 치유·휴양 산업과 적극적으로 결합하여, 실질적인 인구 유입과 주민 소득 증대를 이끌어내는 '지역 소멸 대응 핵심 자산'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했다.



기자 이미지

구경모(세종)

정부 세종청사 출입하고 있습니다.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정치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