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인사를 찾아서] 탤런트 이일웅

  • 입력 2005-06-18   |  발행일 2005-06-18 제8면   |  수정 2005-06-18
브라운관 밖 善行과 연애하는 연예인, 각종 연예인클럽 회장직…왕성한 봉사활동
수중 자연보호·소년소녀가장 돕기 등 솔선, 재능·끼있는 고향후배들 발굴하고 싶어
[출향인사를 찾아서] 탤런트 이일웅

작가가 작품을 쓸 때, 아니 그보다 훨씬 전 단계인 구상에 들어갈 때부터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게 되는 부분이 등장인물의 성격을 창조하는 일이다. 또한 연기자도 처음 대본을 받아 읽게 되면 예외없이 자신이 맡게 될 인물의 성격을 어떻게 해석하고 설정할 것인가를 고심하게 된다.

하지만 요즘 신인연기자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단지 거품같은 자신의 인기만을 믿고, 연기에 대한 진지한 고민없이 시청자와 대면하려 할 뿐이다. 방송의 환경이 그만큼 변화된 것이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인 의식 결여는 연기자 자신의 발전에도 해가 될 수밖에 없다.

"깊이가 없는 연기, 혼이 실리지 않은 연기는 떠다니는 구름과 같다"는 것을 중견 연기자 이일웅은 강조한다. 최근 대하사극 '왕건' '제국의 아침' '무인시대' 등을 통해 선굵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그를 만났다. 연기의 내공이 느껴지는 리얼리티의 진수는 역시 사극. 바로 이일웅 같은 중견연기자들이 그 자리를 지켜주고 있기에 시청자들은 브라운관을 찾게 된다.

이일웅을 만나기 전까지는 사실 그에 대해 단편적인 지식만을 갖고 있었다. 연기 경력 40년의 정통파 배우라는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는 겉에 드러난 이상으로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지니고 있었다.

그에게서 건네받은 명함에는 간접적으로나마 그 내용이 또렷이 새겨져 있다. '섬길 사랑회'(섬길은 그의 호), '연예인 레저 스포츠 클럽 회장 이일웅'. 그는 낚시광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연예인 낚시 클럽'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낚시꾼 사이에선 "그를 모르면 진정한 낚시꾼이 아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 명함에 이렇게 새겨 넣었을까?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 외에도 '연예인 스킨스쿠버 클럽' '연예인 스키 클럽' '연예인 오성 축구단' 등의 회장과 고문 등을 맡고 있다. 환갑이 넘은 나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는 왕성한 활동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이 모든 모임들이 단지 취미생활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남녀 탤런트 50여명으로 구성된 '연예인 스킨스쿠버 클럽'의 경우, 동·서·남해를 넘나들며 수중자연보호운동의 첨병 역할을 20년 넘게 해오고 있다.

사미자·여운계·김을동·현석·정명환·홍요섭·백준기 등이 주축으로 1984년에 창단했다. 이 단체는 처음 취미가 같은 사람끼리 화합을 다지자는 목적으로 소규모로 출발했다가 수중자연보호운동을 한번 전개해보자는 취지로 모두가 의기투합해 발족했다. 밑바닥 청소와 불가사리 제거 등은 이들이 하는 핵심 임무. 이들은 주로 부산 해운대, 속초 연금정, 목포의 갓바위해수욕장과 동해안 일대를 돌며 불가사리 제거에 나섰고,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해 이들의 활동은 9시 뉴스의 메인을 장식하기도 했다. 그 덕에 항상 부족했던 경비는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고, 해당 지자체와 연고를 가진 기업들은 이들에게 경비와 물품을 지원했다.

"한번은 강원도 인제의 '합강'(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오물을 수거하는 중에 6·25 때 사용됐던 수류탄과 박격포탄 20여개가 발견된 적이 있어요. 이를 계기로 한탄강의 상태를 상세하게 수중카메라로 찍어 인근 군부대에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이일웅은 규모가 가장 컸던 행사로 속초 대포항 쓰레기 수거작업을 든다. 3개 지상파방송의 중계와 함께 바닷속에 퇴적돼 있는 각종 쓰레기를 전국 각지의 스킨스쿠버 회원과 공동으로 제거하는 대대적인 행사였다. 그는 "2~3일을 목욕해도 냄새가 날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수거한 오물은 아마 트럭 40~50대분이 될 겁니다. 당시 찍은 앨범과 비디오화면만 해도 제 키를 넘을 정도니까요."

그가 91년부터 회장직을 맡고 있는 '연예인 스키 클럽' 또한 엄용수·백일섭·김용건·김세환·현석 등을 주축으로 매년 겨울 베어스타운·서울리조트·천마산 등에서 그 지역 어려운 이웃을 돕는 행사로 발전시켜 나갔다. 지난해에는 구리시 소년소녀가장들을 초청해 스키를 함께 타며 선물과 식사 등을 제공했다.

'연예인 낚시클럽'은 이덕화·정명환·이계인·이종만·김형일 등을 주축으로 1년에 두 번 어려운 이웃 돕기 낚시대회를 연다. 특히 경기도 광주의 유정리 낚시터는 그가 자주 찾는 곳. 그는 "부지런한 성격 탓에 여러 모임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고 했다.

최근 그는 정신대 할머니들을 돕기 위해 만든 '섬길 사랑회'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1년에 5~6번은 꼬박 꼬박 찾아가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가 정신대 할머니들과 인연을 맺은 것은 10여년 전이다. 할머니들이 성균관대 뒤에서 셋방살이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접한 후 처음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 경기도 광주시 퇴촌에 할머니들의 안식처인 '나눔의 집'이 마련됐다는 소식에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그들을 돕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98년에는 '나눔의 집' 화단에 무궁화 1천500그루를 심는 행사를 한 언론사와 공동으로 기획했다.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한 사람 당 5천원씩 성금을 거둬 나무를 심고 나무에 기부자의 명패 달아주기 운동을 전개한 것. 12m짜리 국기게양대와 닭장 등도 그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다.

이런 그의 선행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지난해는 서울 정도(定都) 600년 기념 '자랑스러운 서울시민 6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1942년 의성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이일웅은 부친이 그가 다니던 밀성초등에 부지 3천평을 선뜻 기증할 정도로 넉넉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가 가장 존경한다는 부친 이한백(李漢白)은 서울 중앙고보(현 중앙고)를 나와 일본 중앙대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안동에선 축구선수로도 이름을 날렸다.

이일웅은 초등 2학년 때 안동으로 이사를 간 후 안동 중·고를 다니면서 명석한 두뇌와 적극적인 활동성으로 주목을 받았다. 졸업 후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던 그는 마침 연세대 정외과에 다니던 삼촌의 권유로 정치가의 꿈을 키우게 된다. 우선 서울 중동고 2학년에 다시 편입했다. 서울과 지방의 학력차가 있던 터라 좀 더 시간을 벌어보려는 계산에서다.

그는 특히 웅변과 영어에 매진했다. 그러던 중 그의 인생항로에 영향을 미칠 계기가 마련된다. 영어를 잘하고 똑똑했던 이일웅을 눈여겨봤던 영어선생님이 그를 연극반원으로 픽업한 것. 물론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도내에서의 활동을 그에게 약속했다.

사실 연기에 별다른 흥미와 관심을 갖고 있지 않던 그는 단지 영어를 활용해보고자(당시는 원어 연극이 대부분) 연극반에 가입했다. 결정적으로 그의 마음이 (연기로) 굳혀진 것은 동국대 극회가 주최한 '제1회 전국 남·여 고등학교 연극 경연대회'에 출전하고 난 후부터.

당시 조우코리 작 '탄갱부'로 전국 12개 고등학교가 경합한 연극제에서 단체 1등을 차지했고, 이일웅은 최우수 개인 연기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게 됐다. 이일웅은 자신에게 예술적인 끼가 흐르고 있음을 이때 처음 알게 됐다고 했다.

결국 서울대 정외과를 가겠다는 목표를 바꿔, 동국대 연극영화과 장학생으로 입학한다. 이일웅은 대학에 들어가서도 두드러진 리더십으로 학생회장을 맡는 등 군계일학의 모습을 보였다.

64년, 4학년 재학 중에 KBS 공채 4기로 수석합격한 그는 2~3년 동안 단역을 전전하다 69년 KBS 일일극 '미스터리 흥분하다'로 첫 주연을 맡게 된다. 이후 히트작인 '심청전'에서 김자옥(심청이 역)과 함께 심봉사로 출연했고, '실화극장'으로 그의 입지를 굳혔다.

특히 76년 작 '유럽특급'은 그를 강렬하고 개성있는 연기파 배우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당시 '곽태기'라는 악독한 북한 공작원을 연기했던 그는 지금도 종종 이름대신 "곽태기"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일웅은 이 작품으로 KBS 연기상을 수상했다.

"심청전에서 심봉사 역할 할 때가 내 나이 서른입니다. 젊어서는 노역을 많이 했고, 중년에는 악역을 주로 전담했습니다. 멜로드라마 주인공을 한 번 못해본 것이 아쉽지만 역할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했던 점이 오늘날 연기자로 후회없는 삶을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된 셈이죠."

그에게는 한가지 바람이 있다. 고향을 위해 일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연기로 살아온 인생입니다. 재능과 끼가 있는 고향후배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연기지도를 해주며 살고 싶어요. 저를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작은 힘이나마 고향을 위해 이 한 몸 불사를 용의가 있습니다. 마땅히 그래야 하고요."

[출향인사를 찾아서] 탤런트 이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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