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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7일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만주기행단 일행이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용성진에 있는 청산리 전적지를 찾아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다 숨진 독립군의 넋을 기리며 묵념을 하고 있다. |
영화 ‘암살’이 올여름 극장가에서 흥행을 주도하고 있다. 1930년대 상하이 임시정부와 의열단이 일본군사령관과 반민족 친일자본가를 제거하기 위한 작전을 그린 이 영화 속에 만주의 독립군과 경신년 대참변의 장면이 나온다.
만주는 일제강점기 ‘간도’로도 불렸다. 현재 중국의 동북3성이다. 이 지역은 고대 우리 민족이 세운 고구려, 발해의 옛 터전이었다. 400여 년간 고구려의 도읍지였던 지안(集安)과 발해의 수도였던 동경성이 있으며 산하 구석구석마다 수많은 유적과 유물이 널려 있다. 이곳은 또한 근세 암흑기 조국의 광복을 위해 무장투쟁을 했던 애국지사의 혼이 서려있는 곳이다. 청산리, 봉오동 전적지를 비롯해 수많은 항쟁지가 있다.
우리는 만주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울렁거리지만, 중국은 이 용어가 마뜩잖다. 그래서 ‘동북3성’이라 한다. 그 이유는 역사 속에 지워버리고 싶은 만주국에 대한 쓰라린 기억 때문이다. 중국은 지금도 여전히 일본이 세운 만주국 앞에 거짓 ‘위(僞)’를 붙여 ‘위만주국’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만주는 여전히 만주로서 존재한다.
만주에 비해 간도는 압록강, 두만강의 ‘사이 섬(間島)’이란 뜻과 땅을 개간하다는 ‘간토(墾土)’의 의미가 있다. 간도는 그 영역이 점차 넓어져 북간도, 동간도, 서간도로 불렸다. 북간도는 지금의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일대이며, 동간도는 자치주 위 지린성 일대, 서간도는 압록강 위쪽 랴오닝성 일대였다. 간도에는 서로군정서, 북로군정서, 대한독립군, 대한독립단, 광복군사령부 등 여러 독립군기지가 있었다. 이곳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광복이 된 후 중국의 소수민족이 된 조선족동포는 연변에 조선족자치주를 세웠다.
‘산마다 진달래요, 촌마다 열사기념비라네.’
중국의 시인 허징즈는 연변에 있는 600개 넘는 혁명열사기념비를 보며 이 시를 읊었다. 항일전쟁 시기 연변지역에서 숨진 독립운동가가 2천726명이었다. 이 가운데 2천560명이 조선족동포였다고 알려진다. 그래서 연변은 조선인의 피와 땀으로 세운 자치주다. 백두산을 둘러싼 연변과 만주와 한반도의 경계인 압록강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녘땅을 바라볼 수 있는 곳 또한 만주다.
광복 70주년, 창간 70주년을 맞아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가 ‘2015 만주항일기행’을 기획했다. 이번 기행의 목적은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독립투사의 항쟁지를 찾아 그들의 정신을 기리고, 민족의 화합과 평화통일에 대한 의지를 다지기 위해서다. 분단이 되지 않았다면 기행단은 서울~평양~신의주를 거쳐 단둥으로, 자강도 만포에서 지안으로, 함경도 남양에서 도문으로 직행했을 것이다. 이번 여정은 서해를 경유해 다롄~단둥~지안~통화~백두산~청산리~용정~연길~도문~선양~다롄을 거쳐 대구로 왔다.
기자는 10년 전 연길에 1년간 살면서 동북3성을 헤매 다녔다. 그 이후에도 이 지역을 여러 차례 답사하고 ‘신간도 견문록’을 내기도 했다. 이번 호 위클리포유의 주제는 ‘2015년 다시 찾은 만주’다. W2면에 계속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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