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 70년·창간 70년 ‘독립운동의 聖地’만주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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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가 교수형을 당했던 뤼순형무소 사형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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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주기행단이 비암산 일송정에 올라가 가곡 선구자를 합창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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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 시인의 생가 옆에 새로 지은 기념관. 곧 개관할 예정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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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오동 전적지를 찾은 기행단이 묵념을 하고 있다. |
일송정 주변에는 데크 깔아
다니기 수월해져
일행 소리높여 선구자 합창
해란강이 석양에 반짝였다
초라했던 윤동주 생가는
몰라보게 말끔히 단장돼
돌비석·기념관 새로 생겨
댐으로 수몰된 봉오골 입구엔
예전보다 3배나 커진 전적비
◆용정=청산리~화룡을 거쳐 용정에 다다랐다. 화룡~용정 구간은 4차로 고속도로다. 차창 밖 조선족마을이 보인다. 10년 전 신농촌운동이 한창 시작될 즈음 연변을 떠났는데 당시 주택은 대부분 초가이거나 주황색 기와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붉은 기와로 말끔히 단장됐고, 마을도 깨끗하다. 일주일 전 시진핑 주석이 화룡에 있는 한 조선족마을을 방문했다고 하는데, 화제가 됐다고 한다. 용정은 연변에서 조선족동포의 거주 비율이 67%로 가장 높은 지역이다. 일제강점기 간도일본총영사관(간도 파출소)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용정시내 도로가 확장됐고 거리도 깨끗해졌다. 기행단은 일송정이 있는 비암산에 올랐다. 정상 부근 주차장에서 일송정까지 나무데크를 만들어 수월하게 다닐 수 있도록 했다. 일송정 비석 주변과 일송정 주변에도 역시 나무데크를 깔았다. 전과 다른 모습이다. 일송정 옆 소나무는 2003년 3월에 9번째로 심은 것인데 죽지 않고 잘 자라고 있었다. 이곳엔 1938년까지 천년송이 있었다고 한다. 일제가 고송이 눈에 거슬려 고사시켜도 동포는 계속해 소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일행은 일송정 앞에서 한 조선족동포의 지휘로 가곡 ‘선구자’를 소리 높여 합창했다. 다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서전벌을 가로질러 흐르는 해란강이 석양에 비쳐 반짝거렸다.
기행단은 다시 민족시인 윤동주가 다녔던 대성중학교를 둘러봤다. 옛 학교 건물 앞에 학사모를 쓴 윤동주 시인의 흉상이 하나 더 생겼다. 건물 내부가 새롭게 단장됐고, 각종 사진과 전시자료도 훨씬 늘어났다. 이어 시인의 생가인 지신진 명동촌으로 향했다. 초라했던 생가도 몰라볼 만큼 말끔히 정비되고 단장됐다. 생가 입구에 커다란 돌비석과 기념관도 새로 생겼다. 주변에 윤동주의 시가 적힌 시비가 즐비하다. 시인의 동지이자 친구였던 독립지사 송몽규의 고택도 한 동포사업가가 사비를 들여 정비했다고 한다. 당시엔 허물어져 무너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이어 윤동주의 묘소로 향했다. 가는 길에 3·13운동 반일의사릉, 15만원 탈취사건 기념비, 선바위, 독립운동가 김약연 묘소, 주덕해 연변조선족자치주 초대 주장의 생가가 있다. 일행은 윤동주와 송몽규 지사의 묘소 앞에 술을 따르고 절을 했다. 그토록 바라던 조국광복이 됐음에도 70년이 지나도록 국토는 반으로 잘려 신음하고 있는 현실을 이들 두 지사는 어떻게 생각할까.
◆연길과 연변과학기술대=연길은 조선족동포의 수부(首府)다. 용정에서 차로 20분만 가면 된다. 연길의 밤은 10년 전보다 훨씬 화려했다. 새로운 건물도 많이 들어섰다. 부르하통하 주변에 맥주광장도 새로 생겼다. 이날 밤 기행단은 연길 한성빈관 연회장에서 허길 연변대 행정대학원 교수, 방금숙 연변대 조선어학과 교수를 초청해 ‘조선족자치주와 동북아 평화’를 주제로 세미나를 가졌다.
이튿날 오전 기행단은 연길시 북산가에 위치한 연변과학기술대(총장 김진경)를 방문했다. 과기대는 1993년 중국 최초로 세운 중·외합작 대학이다.
◆도문과 봉오동 전적지=기행단은 도문으로 향했다. 도문 초입에 도착할 즈음, 왼편 산자락에 있는 탈북자수용소를 보았다. 연변은 두만강과 접해 있다. 특히 북한에서 두만강을 건너 도문, 연길, 용정으로 오는 이탈주민이 많다. 두만강변에 철책선이 생기고 국경수비대의 감시가 삼엄해도 목숨을 걸고 도강한다. 하지만 예전보다 그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도문의 해관인 교두국문에 올라가면 북한을 조망할 수 있다. 맞은편은 북한의 남양시다. 두만강은 푸른 물이 아니고 황톳물이다. 관광객을 태운 동력선이 두만강 변경을 오가고 있다. 일행은 다리 중간지점 국경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연길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홍범도 장군이 대승을 거둔 봉오동 전적지로 향했다. 1920년 6월에 벌어진 봉오동 전투는 중국 영토인 만주지역에서 독립군과 일본군 사이에 본격적으로 벌어진 최초의 대규모 전투였다. 전투가 벌어졌던 봉오골은 지금 댐으로 수몰됐다. 댐 초입에 봉오동 전적비가 있다. 1993년에 세운 것은 허물어지기 일보직전이다. 10년전 기자가 처음 갔을 때 새로 전적비를 세웠는데, 그때보다 3배 이상 커진 전적비를 만날 수 있었다. 일행은 모두 묵념을 올렸다.
◆선양 9·18만주사변박물관=연길~선양은 기차로 14시간 걸렸다. 편리한 야간침대열차를 이용해 이동했다. 기행단은 오전 일찍 9·18만주사변박물관을 둘러봤다. 박물관에는 중·일전쟁과 관련된 각종 사진과 전시자료를 모아놓았다. 중국은 일제가 만주국을 세우면서 저지른 만행을 박물관을 통해 상세히 알리고 있다. 전시관 안에는 일제에 저항한 동북항일연군에 대해서도 자세히 소개했다. 무장독립운동을 했던 김일성의 밀랍인형도 전시돼 있다. 주보중 등 중국지도자 초상 옆에 허형식, 조상지, 리홍광 등 동포의 초상사진도 나란히 걸려 있다. 특히 허형식은 구미시 임은동 출신으로 1915년 6세 때 일가를 따라 만주로 망명했다. 그는 시인 이육사의 외가 친척이자 구한말 군대가 해산되자 서울진공작전을 펼쳤던 왕산 허위의 종질이다. 육사의 시 ‘광야’에서 ‘백마를 탄 초인’의 주인공으로 알려진다. 그는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참모장과 3군장을 역임했으나 1942년 헤이룽장성 칭안현에서 전사한다. 헤이룽장성 상지시는 동북항일연군 조상지 장군의 이름을 딴 도시다. 이곳에는 경상도에서 이주한 동포가 많이 살고 있다.
◆뤼순형무소=뤼순은 다롄에서 차로 2시간 정도 걸린다. 뤼순의 항일기행지는 형무소다. 매년 중국인 70만명과 한국인 7만여명이 뤼순감옥을 찾는다고 한다. 러시아가 감옥을 지었으며 일제가 활용하다 지금은 뤼순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됐다. 이곳에서 안중근 의사와 류상근, 최흥식 지사가 사형됐으며 신채호, 이회영 선생 등이 옥사했다. 안중근, 신채호, 이회영 선생의 흉상이 각각 있으며 전시관도 나란히 있다. 안 의사가 수감됐던 감방과 교수형을 당했던 곳, 그가 남긴 유묵 등도 관람할 수 있다. 일행은 안 의사가 순국한 곳에서 묵념을 올렸다. 뤼순형무소는 안 의사를 비롯한 항일지사의 숨결이 묻어있으며 한국인이면 반드시 한번은 봐야 할 곳이다. 이 밖에 고문실과 병실, 사형을 집행했던 건물도 볼 수 있다.
기행단은 뤼순형무소 일정을 마지막으로 항일기행을 마쳤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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