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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미술의 경향이 너무 다양해 트렌드나 주도적인 흐름을 말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1950~70년대만 해도 한국 미술은 국제적인 경향에 눈을 떴고, 동시대의 미술 흐름과 함께 했던 흔적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특히 서양화가 도입된 이래 자연주의적 경향이 활발했던 대구 미술계에 1950년대에 들어 추상화가 등장한 것은 큰 사건이었는데 이는 몇몇 작가들이 개별적 활동을 보이면서부터다. 그 대표적 작가가 정점식 선생이고, 동시대에 다른 개성을 보인 작가로 장석수·박광호 선생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미술운동과 같은 미술사적인 큰 사건으로 기록되진 않지만, 이들의 활동은 당대 모던의 충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점식 선생은 어릴 적부터 흡수된 동양 문화가 추상이라는 모던의 형식과 만나 수묵이나 서체와 같은 체득된 매너가 자연스럽게 배어나온 것이 그의 서체 추상으로 발전했다. 광복 직후에 대구로 왔지만 자신의 그림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 1950년대를 기다려야 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그림을 이해하고 인정해줄 수 있는 세상의 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박광호 선생의 경우 고집스럽고 이기적으로 비치는 성정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무리를 이루지 못했다. 더군다나 그의 초현실적인 그림에는 선정적인 소재가 등장했고 알 수 없는 문자나 기이한 형식을 보여줘 당시에는 그저 자신의 세계에 빠진 작가로 여겨질 뿐이었다. 장석수 선생은 ‘흑암(黑暗)을 등진 방안에서’란 글에서 자신이 배운 기존의 가치, ‘금과옥조’와 같은 자연주의 화법을 부정해야 하는 심경을 이야기한다. 그는 자신의 세계를 품기 위해서 세상과 고독하게 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새로운 미술, 모던의 충격은 결국 세상을 바꾸지만 세상의 시간과 예술가의 시간이 같지는 않았다. 세상의 시선을 외면한 채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드러내는 작업은 분명 어려운 일이었을 터이다. 또한 작가의 사회적 입지가 공고하거나 그 존재가 화단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지 않는다면 점점 시간이 흘러 정보의 단절로 작가의 존재는 묻혀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 모던의 충격은 얼마 지나면 일상이 된다.
얼마 전에 시작한 대구문화예술회관의 소장작품전인 ‘대구의 추상미술’에서는 시간의 흔적을 역력히 느낄 수 있다. 간혹 관람자 가운데는 작품이 어떤 사조의 영향이라거나 누구를 비슷하게 모방했다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대의 개척자들에게 자신의 예술은 다른 세상을 볼 줄 아는 힘이었을 것이고, 동시에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대가를 치를 만큼 잔인한 유혹이었을 것이다. 비록 그 과정에 시행착오가 있다하더라도 결코 작가의 개인적, 역사적 가치를 오늘의 눈으로 쉽게 봐서는 안 될 것이다.
박민영 <대구문화예술회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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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모던의 충격](https://www.yeongnam.com/mnt/file/201602/20160211.01021080734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