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해서 판 한 우물…전문가·능력자로 우뚝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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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20   |  발행일 2017-10-20 제34면   |  수정 2017-10-20
■ 덕업일치-성공한 덕후 전성시대
대구지역 문화예술계 덕업일치 주인공 “나야, 나”
20171020

◆덕후가 주목받아

어떤 한 가지 일에 몹시 열중하는 사람을 흔히 ‘마니아’라 칭하는데 최근에는 이들을 ‘덕후’로 부르는 이들이 많다. 덕후는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뜻하는 일본말인 ‘오타쿠(御宅)’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오덕후’의 줄임말이다. 1970년대 일본에서 등장한 신조어인 오타쿠는 원래 집이라는 뜻이지만 집 안에만 틀어박혀서 취미생활을 하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주로 쓰였다. 취미생활에 너무 깊이 빠져있다 보니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고 사교성도 부족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이들이 가진 취미에 대한 인식도 부정적인 편이었다. 덕후의 생활을 지속적으로 하려면 꽤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 일반인들이 볼 때 실질적인 대가가 없는 일에 몰두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프라모델, 피규어 등 장난감이나 만화, 연예인 등에 몰입하는 것을 보고 유아적 취향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상당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들을 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어떤 분야에 집중해 마니아 이상의 열정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긍정적 의미로 발전됐다. 어떤 이들은 덕력(덕후의 공력)이 강한 덕후들에 대해 ‘학위 없는 전문가’라는 애칭까지 붙여준다. 2015~2016년에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능력자들’도 덕후들의 긍정적인 모습을 각인시키는 데 한몫했다. 소방서 덕후, 매운맛 덕후, 앵무새 덕후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출연해 자신만이 가진 능력을 소개했다. 이 방송 외에도 가수 이상민은 신발, 김건모는 소주, 배우 심형탁은 도라에몽 수집 등 자신의 독특한 취향을 방송을 통해 공개함으로써 대중적 호감을 사기도 했다.

덕후들 간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숨어있던 덕후들이 세상 밖으로 하나둘 나오면서 이들의 취미를 개인의 취향, 나아가서는 남다른 개성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혼자서 즐기던 취미생활에서 벗어나 같은 취미를 가진 덕후들끼리 관련 정보를 교류하거나 덕질 후기 등을 공유함으로써 덕후로서의 전문성을 더 깊이 있게 파고들어가는 것은 물론 관련 상품의 개발 및 판매 등에 도움을 주는 목소리도 점점 키워가고 있다.

덕후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긍정적으로 바뀌어감에 따라 다양한 분야의 덕후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기업들의 관심까지 촉발시키고 있다. 특정 분야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최근 소비시장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소비시장이 얼어붙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에는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덕후들에게 제조업계와 유통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수집형 덕후들의 경우 수집하는 대상과 관련된 상품 등을 꾸준히 사모으는데 좋아하는 연예인의 앨범, 잡지 등을 모으는 팬클럽이 대표적이다. 프라모델, 피규어, 운동화, 만년필, 시계 덕후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이들의 수집욕이 자연스럽게 제조 및 유통업체의 매출상승으로 이어진다. 덕후가 늘어나면서 ‘덕후 경제’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덕후의 취향이 어떤 제품의 생산과 소비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됨으로써 우리 경제의 한 부분을 지탱하는 축으로 서서히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회부적응자서 능력자로 덕후 인식전환
숨어있던 덕후들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
관련 정보 공유로 전문성 더해 상품개발
최근 새 소비권력이자 생산 주체로 주목
대구 문화예술분야 덕업일치 주인공 다수

쇼나조각 전문 쇼움갤러리 김수현 대표
사진가 윤국헌·신홍식 아트빌리지 대표
좋은 작품 보면 밤잠 설친 미술애호가
안혜령 리안갤러리 대표가 대표적 인물


◆지역의 덕업일치 주인공들

대구지역을 둘러봐도 한 우물만 줄기차게 파서 덕업일치의 경지에 오른 덕후들이 많다. 특히 문화예술 분야에서 이들의 활동은 두드러진다.

대구를 대표하는 화랑인 리안갤러리(대구 중구 대봉동)는 2007년 문을 열어 10년 만에 전국적 명성을 갖게 된 화랑이다. 대구만이 아니라 서울에도 갤러리를 열어 수도권 컬렉터들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으며 아트바젤홍콩 등 세계적 규모의 아트페어에도 매년 참가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또 지역에서는 드물게 전속작가 개념을 도입해 작가들이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경제기반을 마련해줘 주목받았다. 현재 전속작가가 남춘모, 박종규 등 지역작가들인 점도 반가운 소식이다. 지난 2월에는 대구화랑협회 회장으로 뽑혀 대구를 대표하는 미술축제인 대구아트페어를 총괄지휘하고 있다.

하지만 안혜령 대표도 리안갤러리를 운영하기 전까지는 좋은 미술품만 보면 사고 싶어서 밤잠까지 설치는 미술애호가이자 컬렉터였다. 미술품이 좋아서 하나둘 모으기 시작하면서 미술공부를 깊이 있게 했고 여기에 타고난 안목까지 더해져 좋은 작품을 많이 소장하게 됐다. 이런 것이 기반이 돼 자신이 직접 미술품을 사고파는 화랑까지 경영하게 된 것인데 그동안 수집한 좋은 작품이 많았기 때문에 개관전으로 ‘앤디 워홀 추모 20주년 기념전’을 마련해 지역문화계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 이후에도 백남준, 데미안 허스트, 알렉스 카츠, 키키 스미스, 데이비드 살리 등 세계적 명성을 가진 작가들의 작품전을 열어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안 대표는 지역작가의 성장, 발전에 힘을 쏟는 것과 함께 리안갤러리의 탈지역화, 세계화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지역작가 중심으로 전속작가 시스템을 구축하고 2013년에 리안갤러리 서울을 오픈하고 개관전으로 데이비드 살리 개인전을 연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안 대표는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지금은 리안갤러리가 한국에서 파워 있는 갤러리로 자리 잡았다. 또 세계 주요 갤러리 대표 및 관계자, 세계 유명 매체, 소더비·크리스티를 비롯한 미술전문 경매회사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꼭 들를 만큼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곳이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초 대구지역에서 처음으로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조각인 쇼나조각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갤러리가 생겨 눈길을 끌었다. 김수현 대표가 운영하는 쇼움갤러리(대구 동구 효목동 e아름다운치과 내)다. 김 대표는 2000년대 초반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서 처음 쇼나조각을 본 뒤 매료돼 아프리카를 4번이나 직접 찾아가 쇼나조각을 수집하는 열정을 보였다. 쇼나조각은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한 부족인 쇼나부족이 만든 조각으로 1950년대부터 세계미술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김 대표는 1950년대의 1세대부터 현재의 4세대 쇼나조각까지 두루 소장하고 있으며 e아름다운치과 1층과 4층에 갤러리를 마련해 상설전시를 하고 있다. 기존 대구에서 보여주었던 쇼나조각이 대부분 소품이었는데 그의 작품은 대작이 많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김 대표는 자신이 소장한 쇼나조각을 좀 더 많은 시민에게 보여주고 쇼나조각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갤러리를 만들었다. 쇼나조각 전문 전시공간으로 시작된 쇼움갤러리는 최근 전시 장르를 점점 넓혀가고 있다. 쇼나조각과 평면회화의 접목을 시도한 것이다. 갤러리 벽면에는 평면회화를 걸고 전시장 곳곳에 쇼나조각을 전시해 다양한 장르를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올해 초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대규모 전시를 열어 호평을 받은 김 대표는 내년에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쇼나조각의 역사를 보여주는 큰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김 대표는 “내년 전시에서는 아프리카 쇼나조각과 한국 평면회화의 조화를 보여줄 계획이다. 딸기작가인 정창기, 달항아리 작가인 최영욱, 소나무 작가인 김상원을 초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진작가 윤국헌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을 관두고 사진에 빠져 전업사진작가로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 사진덕후이다. 한국조폐공사라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가진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1996년 23년이나 다니던 한국조폐공사를 그만두고 사진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결혼을 하고 딸이 태어나자 딸의 성장과정을 찍어서 결혼할 때 선물로 줄 생각으로 사진을 찍은 것이 발단이 돼 시쳇말로 ‘신의 직장’인 조폐공사를 그만두고 돈과는 별 상관이 없는 사진작가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취미로 했던 사진에 빠져 직장을 다니면서 경일대 사진영상학과와 경성대 대학원(사진전공)을 졸업한 그는 결국 사진을 원 없이 찍기 위해 퇴직을 하고 전업작가가 됐다. 현재는 흑백사진전문연구회인 ‘사진연구소 빛그림방’을 비롯해 ‘포토마실’ ‘사진친구들’과 대구대 디자인대학원 및 평생교육원 사진동아리모임의 지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성안오피스텔 16층에 자리한 미술작가들의 작업공간 ‘아트빌리지’를 만든 신홍식 대표는 그림 덕후였다. 사업을 하던 그는 취미로 그림을 구입하기 시작하다가 그림에 푹 빠져 사업을 접고 아트빌리지를 만들었다. 그림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작가들을 알게 됐고 친한 작가들의 작업공간 마련에 도움을 주기 위해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오피스텔 한 층 전체를 레지던시공간으로 조성했는데 그것이 바로 아트빌리지다. 800㎡ 넘는 이 공간은 오픈 당시 장이규, 김윤종, 강주영, 김영대, 박종경, 손만식, 김종준, 정창기, 모기홍, 윤종대 등 지역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많은 화가들이 입주해 작업활동을 펼쳤다. 그 이후 다른 곳으로 작업실을 옮기는 작가가 생겨나면서 현재까지 새로운 작가들이 계속 영입돼 창작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그림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컬렉터이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직접 창작활동을 해 나비 등을 소재로 한 설치작품도 만들고 있다.

그의 꿈은 20~30년간 구입한 그림 수백 점으로 미술관을 만드는 것이다. 현재 중구에 부지를 매입 중이며 매입이 완료되면 미술관을 만들어 중구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키워나가려 한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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