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傳子傳’ 고미술품 덕후…“家業으로 이어가요”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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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20   |  발행일 2017-10-20 제35면   |  수정 2017-10-20
■ 덕업일치-성공한 덕후 전성시대
김현규 한맥당 대표
20171020
고미술품 수집가인 김현규 한맥당 대표가 자신이 소장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공무원으로 승승장구하던 아버지 김현규
70년대말 화가 친구 생기면서 덕후의 길
처음 고서화서 서양화 이어 골동품까지
10여년 미술품 수집·공부 재미에 푹 빠져
20여년 직장생활 접고 87년 ‘한맥당’오픈

2000년대부터는 中 고미술품에도 관심
先代에 받은 것 등 200여 宋·元 고서 소장
“중국인도 이때 책 이만큼 가진 이 없을 것”
아들 주식씨 역시 代 이은 고미술품 사랑
서울서 한맥당 2호점 운영…부친과 한 길


1987년 대구 남구 이천동 고미술거리에 문을 연 ‘한맥당’의 김현규 대표(70)는 취미로 미술품을 사 모으다가 공무원을 그만두고 고미술품 화랑을 연, 말 그대로 고미술품 덕후이다.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공무원이었던 그는 87년 화랑을 열기 위해 사직서를 냈는데 수차례 반려됐다가 2개월여 만에 사표가 수리됐다.

“다들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해서 자리를 잘 잡고 있는데 왜 그만두느냐며 말렸습니다. 그래도 이때가 아니면 다시는 화랑을 열지 못할 것 같아서 직장까지 관두고 퇴직하자마자 화랑 문을 열었습니다.”

직장까지 관두고 화랑을 열 정도로 미술품을 좋아하게 된 경위가 궁금해 물었더니 “세무공무원이라 다른 지방으로 출장을 많이 갔었다. 출장을 가면 저녁이나 낮에 빈 시간들이 좀 있어서 몇몇 사람이 모여서 미술품을 보러 다녔다. 아마 그 당시 주위에 미술을 좋아한 사람이 많았던 것이 나를 미술에 빠져들게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70년대 말 친한 화가 한 명을 친구로 삼으면서 그 친구의 작품을 구입하고 다른 이들에게 소개해 준 것이 그가 컬렉터로 접어드는 계기가 됐다. 친구의 작품을 하나둘 사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작가들의 작품으로까지 시야가 넓어지게 된 것이다.

“그 당시는 봉급이 지금처럼 통장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봉투에 넣어주었습니다. 봉급은 한 푼도 손을 대지 않고 아내에게 주고 보너스, 수당, 출장비 등을 모아두었다가 미술품을 한점 한점 사 모았습니다. 이상하게 미술품은 사고 나면 더 사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산 미술품을 이리저리 수도 없이 살펴보는 것은 물론 작품을 만든 작가에 대한 공부,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미술공부를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미술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됐습니다.”

처음 고서화에 관심을 가지던 그는 서양화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이어서 골동품으로까지 시야를 확장했다. 특히 불교미술품과 중국미술품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수집에 열을 올렸다. 이들 미술품은 현대미술품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저도 직장을 쉽게 그만둔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 두려움이 없었겠습니까. 저 나름대로 고민도 많이 하고 치밀한 계산 끝에 내린 결정이었지요. 퇴직을 하면 그동안 직장에 냈던 저금, 상조금 등을 찾아 10년은 안 팔려도 살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습니다. 10년 정도 사 모은 소장품이 있으니까 우선은 팔기 위한 다른 미술품을 더 이상 구입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10년 정도 화랑을 운영하면 노하우를 터득할 것이란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화랑을 열어보니 그의 계산은 완전히 빗나갔다. 예상외로 돈이 많이 들어갔다. 10년 동안 쓸 돈이라 생각한 자금은 3년이 되자 바닥이 드러났다. 미술품을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작품을 파는 데 신경을 쓰기보다는 좋은 미술품이 미술시장에 나오면 사는 데 더 바빴기 때문이다. 가게에 물건만 쌓여가고 매출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몇년 뒤 미술품시장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화랑을 근근이 운영해 나갈 정도의 여건은 갖춰졌다. “가게가 엉망이지요. 가게 수리할 돈도 못 벌었지만 예전에 비해 귀한 고미술품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제가 가진 재산이지요.”

김 대표는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중국의 고미술품에 푹 빠졌다. 중국고서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집안에서 내려오던 중국 고서들을 윗대 어른들에게 좀 받아서 가지고 있었던 터라 중국고서를 보면 왠지 더 친근감이 갔다. 그는 특히 송나라와 원나라의 고서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수집했다. 그는 현재 송나라와 원나라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서를 200권 이상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 시대의 책은 중국에서도 김 대표만큼 많이 소장하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는 말도 곁들였다.

이런 고미술품에 대한 사랑은 그의 아들에게로까지 이어졌다. 아들 김주식씨(41) 역시 고미술품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그의 가업을 이어받은 것이다. 아들은 현재 서울에서 한맥당 2호점을 운영하고 있다.

김 대표는 “아들이 가업을 물려받지 않으면 그동안 수집해온 미술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고민을 했는데 다행히 아들도 이 일을 좋아해서 함께 하게 됐다”며 “경제적인 여유는 별로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미술품을 화랑에서 매일 볼 수 있고, 좋은 미술품이 있으면 구입할 수 있는 약간의 경제적 여유가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예전에 제가 직장에 사표를 낼 때 말리던 친구들이 요즘은 오히려 저를 부러워합니다. 이 일은 정년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진짜 좋아서 하는 일을 제가 하고 싶을 때까지 계속 할 수 있으니까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골동품 수집가로서 나름대로 정한 목표가 있었는데 그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더 기쁩니다.”

이 말을 하면서 그는 화랑 안에 있는 고미술품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둘러봤다. 그는 화랑에 있는 작품의 개수도 모르고 작품들의 먼지를 떨거나 걸레로 닦는 일도 거의 하지 않는단다. 골동품이 가진 그 멋을 그대로 느끼기 위해서다. 그리고 인연이 돼 좋은 사람에게 건네지고 귀하게 대접받는다면 이것 또한 그의 또 다른 즐거움이라고 했다.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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