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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권준 <대구가톨릭대 중남미사업단 교수> |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듣기 힘들었던 두 종류의 뉴스를 종종 접하게 된다. 첫째는 고독사다. 고독사는 예전에도 있었겠지만 뉴스에서 접하는 최근의 현상들을 보면 냉혹한 경쟁사회에서 소모품이 되어가는 현대인의 외로움과 아픔이 전해진다. 이 외로움이란 질병은 ‘그래, 세상이 날 어떻게 기억하는지 두고 보겠어!’라는 심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극단으로 몰고 가 결국은 스스로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다.
상반되는 듯 보이는 둘째 뉴스는 애완동물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가정 내 서열에서 ‘아버지보다 개가 위’라는 말은 그저 농담 삼아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애완동물 카페나 호텔이 여기저기 생기고 있으며, 애완동물 전문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이 죽은 애완동물에 애도의 추념식을 치르는 모습도 이젠 낯설지 않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애완동물은 가족이 된 지 오래다. 자신이 좋아하는 존재에게 진심 어린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다만 상대적으로 사람에 대한 무관심이 너무 커져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두 뉴스가 자연스레 연관돼 다가오는 것이다.
애완동물에 애정을 쏟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대부분의 애완동물은 생존전략으로 혹은 사랑받기 위해 주인에게 순종한다. 주인이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잘생겼든 못생겼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애완동물은 주인의 권력이나 재산, 생김새 등을 평가하지 않는다. 둘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현대인의 개인화와 소외도 주된 원인이다. 우린 점점 자신 외의 주변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잃어가고 있다. 심지어 두 젊은 남녀가 카페에 앉아 카톡으로 대화를 나누며 스마트폰에만 고개를 숙이고 있는 풍경도 낯설지 않다. 우리를 둘러싼 사회가 이러하다 보니 점차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고독감을 위로해줄 상대 혹은 교감상대를 애완동물에서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이 애완동물에게 많은 애정을 갖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그게 인간에 대한 무관심의 반대급부여서는 곤란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사람들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다. 오로지 부를 얻기 위해 사람들을 경쟁으로만 내몰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개인이 파편화되고 고립되고 있다. 애완동물에게도 위기가 닥칠 수 있다. 인공지능 로봇이 돈 들여서 먹여야 하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 돌봐야 하는 애완동물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 비극적인 것은 인간마저 인공지능 로봇과 생존경쟁을 할 것이라는 데 있다.최권준 <대구가톨릭대 중남미사업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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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애완동물과 고독사](https://www.yeongnam.com/mnt/file/201805/20180507.01016074333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