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보르헤스와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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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25  |  수정 2018-06-25 08:12  |  발행일 2018-06-25 제26면
[문화산책] 보르헤스와 꿈
최권준<대구가톨릭대 중남미사업단 교수>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세계적인 문호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란 작가가 있다. 보르헤스는 노벨문학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바로 그 노벨상위원회가 작가가 살아 있을 때 상을 수여하지 못해 가장 안타까워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또한 ‘장미의 이름’이란 소설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움베르토 에코가 작품의 서문에 자신의 작품은 보르헤스에게서 나왔다고 밝힘으로 인해 한국의 일반 독자들에게 어느 정도 알려지기도 했다.

보르헤스는 작품의 난해성으로 인해 일반 독자들보다는 전문가 사이에서 더욱 유명한데, 오늘 소개하려는 글도 환상적인 내용의 주제와 관련한 것이다. 작가는 ‘콜리지의 꽃’이란 글에서 주제의 발전이란 내용을 전개하며 콜리지가 썼다고 주장하지만 그 근거로 모호한 메모 하나를 소개한다. “어느 한 사람이 꿈속에서 천국을 지나갔고, 그곳에 있었다는 증거로 사람들이 꽃 한 송이를 주었는데, 잠에서 깨었을 때 손에서 그 꽃을 발견한다면. 그래서 뭐?” 이 글을 읽은 엔리께 뿌뽀 월케란 한 비평가는 보르헤스가 언급한 것은 영국의 시인 콜리지가 쓴 메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알바르 누녜쓰란 스페인 정복자가 쓴 ‘난파’란 책에 나오는 것으로 보르헤스가 무단으로 그 내용을 인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엔리께가 ‘난파’에 나온다고 주장한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중남미 정복에 참여했던 한 스페인 병사가 어느 날 늦은 오후 숲속에서 지쳐 쓰러져 깊은 잠에 빠진다. 그는 이상한 기운에 잠에서 깨어 주변을 살피다 한 마을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여성이며 하나같이 모두 아름답다. 병사는 너무나 황홀한 시간을 보내다 그 마을을 떠날 때 작별선물로, 그곳에 왔었다는 증거로 한 여인에게서 꽃 한 송이를 받는다. 그러곤 그 마을을 떠나는 순간 병사는 잠에서 깨어난다. 자신이 여인의 왕국을 방문한 것이 꿈이었던 것이다. 병사는 크게 실망하지만 꿈이 너무나 생생해 그것이 꿈이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한다. 그런데 정말로 놀라운 것은 자신의 손에 꿈에서 받았던 그 꽃이 쥐여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가 아는 한 ‘난파’란 책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다. 그렇다면 보르헤스는 그 내용을 어디서 가져온 것일까? 그리고 엔리께는 어디서 가져온 내용을 소개한 것일까? 사실 보르헤스가 굉장한 독서광이었기에 과연 어디서 영감을 얻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엔리께가 ‘난파’에서 본 내용이라고 소개한 글은 엔리께가 쓴 것인지 필자가 각색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 글을 읽는 문화산책의 독자들이 장자의 ‘호접몽’을 연상할 것이란 행복한 생각과 함께 그동안의 글쓰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최권준<대구가톨릭대 중남미사업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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