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청출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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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26  |  수정 2018-06-26 08:22  |  발행일 2018-06-26 제27면
[문화산책] 청출어람
손혜영 (한국무용가)

사람이 책을 쓰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스승이 제자를 만들지만 제자가 스승을 만들기도 한다. 25년 전 대학졸업 후 바로 예고 전공강사로 들어갔고 이어서 학원을 개업해 제자들을 양성했는데, 어린나이에 열정만 가득했지 요령과 기술이 부족한 탓에 오직 ‘열정이 기적을 낳는다’ ‘땀은 빛이 된다’는 슬로건만을 강조하며 힘을 쏟았다.

콩쿠르시즌이 되면 오후 7시에 수업시작을 해서 기본이 새벽 2, 3시에 끝났고 심지어 해 뜨는 걸 보면서 마치고 포장마차에서 우동 한 그릇 먹여 학교에 보냈던 기억이 난다. 생각도 마음도 실력도 부족했던 그때는 열정과 땀만이 정답이었다.

그 시절을 함께 걸어온 제자들이 지금도 계속해서 내 곁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이것이 춤의 삶속에 내가 만난 기적이고 가장 감사한 부분이다. 어느날 연습시간에 오래된 제자들과 지냈던 시간을 계산해보니 10년 이상은 기본이고 20년 이상을 나와 같이 하고 있는 제자도 있었다. 20대에 가르치기 시작한 제자가 지금 30, 40대를 같이 걷고 있다. 그 제자들이 오랜 시간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가장 큰 이유이고, 춤길을 걷는 동안 수많은 장애물을 넘을 수 있던 동력이었으며,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과 비틀거릴 때 단단하게 서 있을 수 있는 뿌리가 됐다. 제자들을 향한 고백하는 마음으로 글을 이어본다.

처음 사회에 나와 학생들을 가르칠 때 10년 동안 공부한 것을 풀어내는데 불과 6개월이 걸렸다. 참 억울한 일이었다. 한 학기에 가르칠 것이 바닥이 나 버린 나는 학교에서 받은 월급과 제자들에게 받은 레슨비를 몽땅 나를 위해 투자하기 시작했다. 더 배워야 더 가르칠 수 있었기에 나를 위해 시간을 투자했다. 배우면서 가르치면서 혼자 연습하면서 연구하면서 쌓아가는 시간 동안 숨가쁘고 힘들었지만 제자들이 자라고 커 가는 것을 보니 더 부지런히 배울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도 제자들과 같이 자라고 있었다. 춤 외에 모든 것이 사치인마냥 오직 춤만을 향해 달려온 그 시간이 참 힘겹고 고독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모든 것이 나를 위한 시간들이었고 엄청나게 큰 성을 쌓고 있었던 것이었다. 또 이것이 무용세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년이 흐른 지금은 쌓여 있는 기술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많은 말보다 짧게 줄여 설명하고 있다. 짧은 설명이지만 같은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이 가끔 신기할 때도 있다. 어느덧, 나는 제자들보다 못해지는 그 순간이 올 것이다. ‘청출어람’이라는 말처럼 이젠 제자가 나보다 더 높이 더 멀리 가는것을 지켜볼 시간이 왔는지 모른다. 내 자리를 지키며 그들에게 더 큰 힘이 될 수 있는 스승으로 남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삶의 다른 부분도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손혜영 (한국무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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