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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극단 가인 대표> |
새벽 공기를 마시며 옥상에 오른다. 여름 한낮의 땡볕을 고스란히 받은 건물의 꼭대기. 그렇지만 밤이 되면 도심의 무더움을 씻어갈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불어온다. 뜨거움과 서늘함이 공존하는 곳이다.
우리 집은 옥상이 있는 3층 건물이다. 옥상에는 주인아주머니가 깻잎, 호박, 고추 등을 가득 심어놓았다. 나는 허락을 받고 그 채소들을 조금씩 따서 맛난 여름 반찬을 만든다. 옥탑방이나 옥상 바로 밑의 집은 여름엔 그야말로 찜통이지만 그래도 가끔 이런 재미로 위로를 받는다. 요즘은 고층빌딩이나 아파트가 많지만 예전에는 동네마다 옥상 있는 집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 집의 손맛을 맘껏 뽐내는 고추장, 된장이 담긴 단지들과 텃밭도 있고 운동기구도 있는 넓은 옥상부터 키 낮은 대문 위 한 뼘을 내어 화분을 나란히 두고 빨래도 널 수 있게 만든 정겹고 예쁜 옥상까지. 다양한 집집마다의 풍경들이 떠오른다. 지금도 오래된 골목에 가면 그러한 집들을 마주할 수 있다.
그런 집들을 보면서 행복했던 한 시절을 추억한다. 어릴 때 여름방학이면 놀러 가던 이모 집의 옥상. 사촌 형제들은 그 옥상을 놀이터로 삼았다. 낮에는 큰 대야에 물을 받아 풀장을 만들어 물놀이를 하면서 시원한 수박을 먹었고, 밤에는 모기향을 피운 채 평상에 앉아 삶은 옥수수를 한 알씩 떼어 먹었다.
그러면 사돈 할머니가 슬그머니 올라오셔서 무서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주었고, 그러면 우리는 매번 듣는 내용이지만 홑이불을 덮고 비명을 질러댔다. 퇴근하는 길에 이모부는 고기를 사와 큰맘 먹고 숯으로 불을 지펴 구워주셨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집 위의 작은 피서지였다.
지금도 가끔 옥상을 보면 그때가 그립다. 별도, 달도 비 내리는 것도 바로 볼 수 있었고 소박하지만 상상력을 가지고 마음껏 놀 수 있었던 지붕 위 마당. 오늘도 옥상에 올라 주변을 본다.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움도 있고 항상 가던 가게가 그림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옥상에서 보는 이웃집들, 지나가는 사람들, 멀리 보이는 산과 빌딩들은 혼자가 아닌 세상 속의 나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옥상은 건물의 일부지만 섬 같은 존재다. 외로운 무인도가 아니라 조금은 떨어져서 내가 살아온 곳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안식처 같은 섬. 하늘과 맞닿아 있지만 땅이 보이는 곳, 마음속에 자신만의 옥상을 들여 보자. 건물에 뿌리를 두고도 떠나있는 것 같은 옥상을 담아보자. 팍팍한 삶에 작은 평상 같은 자리를 두어 쉼이 필요할 때 마음의 옥상으로 여행을 떠나자.김성희<극단 가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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