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향수를 찾아-납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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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27  |  수정 2018-07-27 07:49  |  발행일 2018-07-27 제16면
[문화산책] 향수를 찾아-납량
김성희<극단 가인 대표>

대구의 폭염에 맞서 문화예술계에도 다양한 납량특집이 펼쳐진다. 그중 다음 달 2~5일 열리는 대구국제호러페스티벌은 올해로 15회를 맞이해 그 역사를 자랑한다. 축제는 더위에 지친 대구시민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공포체험을 통해 시원함을 선사할 것이다.

예전엔 주로 공포영화를 보러 가거나 TV에서 방영하는 납량특집을 보며 무더위를 이겨나갔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전설의 고향’과 ‘수사반장’이다. “내 다리 내놔라~” 하며 절뚝이며 따라오던 귀신의 대사는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죽인 아내가 매일 밤 “당신이 좋아하는 카레라이스 해놓았어요”라며 전화를 하는 미스터리 범죄물도 밤길을 못 가게 할 정도로 무서웠다.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시청하다가 누군가 고함을 지르면 도미노처럼 울리는 비명 소리가 더위를 저만큼 달아나게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귀신들은 참 마음도 좋았다. 자신을 괴롭히며 죽게 한 원수도 진심으로 뉘우치면 용서를 하고, 심지어는 축복까지 하면서 승천한다. 그 와중에 더 큰 죄를 지은 사람보다 주변 인물들이 먼저 단죄를 받는 드라마의 구성이 다소 못마땅하기도 하다. 아무튼 대체로 ‘죄를 지은 사람이 뉘우칠 가능성’을 전제로 동양의 공포물은 만들어진다. 사필귀정·권선징악이 귀신 이야기의 근본 주제인 것이다.

서양의 추리소설 중에서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들이 그러하다. 인과응보의 주제가 많은데 누군가가 무심코 저지른 말과 행동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고 원한으로 남아 살인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작품인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은 한 소녀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간직한 각자의 사랑법이 사건의 발단이 된다. 자신의 이익 때문이 아니라 측은지심의 공감대가 살인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를 추리해 나가다 보면 공동체적인 인간관계가 얽혀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그런 공식이 통하지 않는 범죄가 너무 많다. 뉴스에 나오는 사건들 중 많은 범죄가 어느 날 갑자기 당하는 무고한 인명피해다. 이런 소식을 접하면 실체를 알 수 없는 위험의 공포가 섬뜩하게 다가온다.

이유도 없이 가하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범죄는 그 옛날 귀신 이야기와 사뭇 다르다. 명확한 죄와 벌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의 교훈은 이젠 화석이 되어 가는가? 시대가 변하고 매년 여름의 공포물도 변해가지만 우리가 어릴 때 눈 가리고 귀 막고 보면서도, 나쁜 사람은 꼭 벌 받고 착한 사람은 살아남는다는 결말을 확신하던 납량물은 이젠 그야말로 허구처럼 보인다. 원인과 관계없이 일어나, 그 끝을 알 수 없는 현실의 공포물이 가장 무서운 이야기가 되었다. 우린 그저 더위를 식히는 서늘한 정도의 납량물을 즐기길 원한다.
김성희<극단 가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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