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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희<극단 가인 대표> |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라는 노랫말이 있다. 연필로 쓰면 지우개로 지울 수 있으니 시행착오가 있어도 수정이 가능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인 듯하다. 학창시절 큰맘 먹고 공부를 하려고 할 때 제일 먼저 하는 일도 연필을 뾰족하고 정갈하게 깎아 필통에 가지런히 놓아두는 것이다. 그러면 왠지 공부 부자가 된 듯 뿌듯해진다.
연필은 명실공히 학문과 예술을 나타내는 데 으뜸이었다. 지금은 키보드의 타자로 글을 쓰는 작업이 이루어지지만 연필은 ‘쓰고 그린다’라는 그 상징성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 처음 글씨를 배울 때 또박또박 쓴 글씨는 그 사람의 평생 필체가 되고 그 필체는 개성과 존재의 의미를 가진다. 특히 작가나 언론인 등 창작 및 집필을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비록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진 않더라도 자신만의 연필 한 자루는 지니고 있기 마련이다. 본인의 글이나 작품이 대중에게 전달될 때까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찾아보고 수정하는 과정은 연필의 기능과 닮아있다. 연필로 쓰다보면 지우개로 지운 흔적이 남을 수 있고 계속 고치다 보면 종이가 너덜해지고 보관을 잘못하면 통째로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만큼 손때가 많이 묻고 그때의 생각과 고민의 자락을 곱씹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입학, 졸업 시즌이면 선물로 받던 연필 한 다스. 소중히 두었다가 한 자루씩 꺼내 쓰다보면 점점 연필이 작아지고 결국 몽당하게 되어 볼품없고 불편해진다. 그런 몽당 연필을 버릴라치면 엄마는 볼펜대를 이용해서 다시 키를 키워주셨다. 아껴 쓰는 습관도 익히지만, 소중했던 그 무엇을 떠나보낼 때의 자세를 배운 것이다. 제 몫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하여 후회 없는 마감이 되게 배려한 거라 본다. 끝까지 최선을 다했던 몽당연필은 촛불 같았다. 심과 심지만 남을 때까지 깎여지고 타오르는 본질이 그러하다.
많은 이에겐 저마다의 연필이 가슴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글씨를 가르쳐주시던 선생님과 함께 꼭 잡았던 연필, 밤새도록 썼다 지웠다하면서 연애편지를 썼던 연필, 책상 위에 또르르 굴려 무료함을 달래었던 연필, 낙서나 그림을 그리면서 공상에 젖게 했던 그 연필들. 새 연필이 몽당연필이 될 때까지 비록 고치고 또 고치더라도 책임 있는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어른이 되려 노력했고 그들을 통해 우린 성장의 추억을 떠올린다.
책상 위에 놓인 필통에 먼지가 쌓여간다. 그 안의 연필은 촉이 무뎌져 간다. 촉이 무뎌진 연필은 세상과 자신의 생각을 올바르게 연결 지어 필기할 수 없게 만든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게 편리하고 경제적이지만 걸어온 발걸음을 돌아보는 미덕도 필요하다. 적어도 자신의 연필심을 단단히 하여 자신만의 글씨체를 만들어 세상과 만나는 어른이 되었길 바라본다.김성희<극단 가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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