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우리에겐 책을 읽을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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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03  |  수정 2018-10-03 07:57  |  발행일 2018-10-03 제21면
[문화산책] 우리에겐 책을 읽을 시간이 필요하다

창고에서 바의 끝까지 대략 여섯 걸음. 폭은 사람 두 명이 팔 한쪽을 겹쳐야 스쳐 지나갈 수 있을 정도. 그 좁은 공간에서 수년간 일했다. 매일 그라인더에서 커피 원두를 갈고, 탬핑을 하고, 머신에서 커피를 추출하고, 우유 스팀을 반복하고, 계절별로 사람을 뽑기 위해 면접을 보곤 했다. 그곳에서 원하는 한 사람이 한몫을 하기까지 어떤 이는 2개월이면 곧잘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6개월이 지나서야 한몫할 수 있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모아 가게 상황에 맞게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나는 그 작은 바 안에서 매니저이자 군림하는 자로 20대 초반의 청년들에게 어떤 말을 내뱉었는지 일일이 기억할 수 없는 시간이 흘렀다.

아직도 선명한 기억 중 하나는 너무 바쁜 시기에 함께 일했던 한 친구의 눈빛이다. 밀려드는 주문을 쳐내느라 일방적으로 명령만 하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힘들다고 얘기했던 그 친구 덕분에 일하면서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지만, 적은 인력으로 최대한 효율을 끌어내야 하는 중간 관리자이자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인 나는 아마도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그리 멋진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일이 끝나고 나면 몸도 정신도 지쳐서 집에서는 꼼짝하지도 않고 잠만 자고 싶어 했다. 그 와중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실제로 당시 어떤 책을 읽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으니 그냥 일만 하며 살아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곳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다른 책방 이야기에 다시 관심이 생겨 손에 든 책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서점’(유유출판사)에서 이현주 작가의 맺음말이 인상 깊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내 삶에 거리를 둘 수 있었고 그제야 타인과 세상이, 무엇보다 내가 더 잘 보였다. 삶에 완전히 매몰되지 않고 그 너머를 보려는 노력과 삶을 더 잘 살기 위함, 그게 바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임을 깨달았다.”(p.256)

작가가 책을 만드는 사람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 되면서 서점과 책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적은 이 맺음말을 읽으며 내가 카페에서 근무했던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일에 함몰되어 내게 도움되는 이와 도움이 되지 않는 이를 쉽게 가르고 모든 생각이 일 중심으로 돌아가며 사람을 단편적으로 판단하는 일이 잦아졌다는 걸 느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찌그러지던 시간이 기억났다.

우리에겐 책을 읽을 시간이 필요하다. 긴 노동시간과 강도 높은 업무량은 사람을 쉽게 지치게 만들기 때문에 텍스트가 가득한 책이 텔레비전에 비해 쉽게 읽힐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적게 일하며 여가시간이 생긴다면 책이 잘 팔리는 시대가 찾아오지 않을까. 그렇다면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 소모품으로가 아니라 그의 삶 그 너머를 보려는 시도를 조금이라도 하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 우리에겐 책을 읽을 시간이 필요하다.

김인숙<카페책방 ‘커피는 책이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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