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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휘<웹 소설 작가> |
벌레는 거북하게 여겨지는 상대를 비유할 때 사용된다. 책벌레처럼 뭔가에 열중하는 사람을 놀림조로 부르기도 하고 돈벌레처럼 돈을 지나치게 밝히는 사람을 낮잡아서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벌레’라는 형태로 사람을 비꼬는 건 옛날부터 자주 쓰이던 표현이다.
오늘날엔 이것이 ‘~충(蟲)’이라는 신조어로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뭔가를 추종하는 무리를 가리키거나, 거슬리는 대상을 비하할 때 사용된다. 처음엔 일부 상식에 어긋난 사람들을 지칭하는 듯했는데, 그 정도가 지나쳐서 혐오하는 사회 분위기로 부추기는 것 같다. 학생들에겐 ‘급식충’이라며 멸시하고 심지어는 탕수육을 소스에다 찍어먹는다고 해서 ‘찍먹충’이라고 할 정도다. 비난의 의미를 담아서 누군가를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멸시는 곧 또 다른 멸시를 낳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 작품 중 ‘오셀로’는 그러한 메시지를 명확히 그려내고 있다.
‘오셀로’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로, 베니스의 무어인 장군 오셀로가 연인 데스데모나를 의심하고 살해한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여기서 무어인이 어떤 인종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무어인이란, 아랍계 이슬람교도로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살았던 사람들을 의미한다. 당시 베니스 공화국은 동지중해를 차지하고 동방무역으로 축적하는 부를 중요시하고 있었다. 난민 이슈가 뜨거운 우리나라에서 그들에게 국방을 맡긴다고 하면 국내 반응은 어떨까? 베니스 역시 해군을 외국인에게 맡기는 법이 없었다. 때문에 무어인 장군으로 온 오셀로는 은연 중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를 느꼈다. 그의 직속 부하는 내심 오셀로를 무어인이라며 무시했고, 주위에서도 본인 없는 자리에서 그를 험담한다. 오셀로가 대한민국 현대인이었다면 싸움충, 무어충 등으로 불렸을지도 모를 일.
그는 연인 데스데모나가 다른 남자와 다니는 걸 목격하고 의심하여 살해해버린다. 이 사건은 오셀로의 질투와 더불어 무어인이라는 자격지심, 열등감 등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을 중심으로 직속부하를 포함한 주변인물들은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그가 무어인이 아니었다면 이야기의 양상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를 장군 오셀로로 보았다면, 사회적 시선에서 자유롭게 뒀다면 책 페이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누군가를 벌레라며 낙인찍거나 편협한 시선을 보낸다면 서로가 비극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 벌레는 작고 기어 다니는 동물일 뿐 결코 사람과 동일시 될 수 없으며, 혐오와 갈등을 조장하는 것 또한 이야기 안에서 그쳐야 한다. 우리사회는 타인을 존중하는 따뜻한 해피엔딩으로 가길 바란다.김휘<웹 소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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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오셀로도 벌레였을까](https://www.yeongnam.com/mnt/file/201810/20181023.01025073658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