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신에게 전하는 인간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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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18   |  발행일 2019-07-18 제30면   |  수정 2019-07-18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은
일상어와 전혀 다른 언어로
신에게 전하는 마음을 담아
요즘의 우리말 병들고 신음
신성성도 심각하게 훼손돼
[우리말과 한국문학] 신에게 전하는 인간의 언어
정우락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언어의 신성성, 어떻게 확보하였을까. 불경에 자주 등장하는 주문(呪文)의 경우를 그 예로 들어보자. 반야심경 마지막에 나오는 주문,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는 제 아무리 한문에 능숙한 자라 할지라도 이해할 수가 없다. “가자, 가자, 피안으로 가자, 우리 함께 피안으로 어서 가자. 피안에 도달하였네. 아! 깨달음이여 영원하라”라고 번역되는 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를 번역하지 않고 범어(梵語) 그대로 음차해 쓴다. 신성성을 강조하기 위한 조처다.

주문을 진언(眞言)이라 하기도 한다. 우리가 세속에서 사용하는 일상 언어를 가어(假語)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선을 진인(眞人)이라 생각했던 것도 같은 이치다. 불교에서 입으로 짓는 죄업(罪業)을 구업(口業)이라 한다. 저주하는 말, 시기하는 말, 어리석은 말, 음란한 말 등을 하게 되면 모두 구업을 짓게 된다. 이를 깨끗이 하는 것이 정구업(淨口業)인데, 천수경에서 이를 위해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라는 진언을 제시한다. 이 역시 인간의 일상어가 아니다.

그렇다면 문자는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가. 한글이 창제되기 전에는 한자로 서로의 의사를 소통했다. 한자 가운데 일상에서 사람들끼리 주로 사용했던 것은 해서(楷書)였고, 신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고자 할 때는 난해한 전서(篆書)를 썼다. 비석의 경우를 살펴보면, 전서로 된 두전(頭篆)과 해서로 된 비문이 있다. 비의 머리 부분에는 전서를 새겨 신이 읽어 위로 받도록 했고, 아래 부분은 기리는 내용을 해서로 새겨 지나가는 사람들이 읽고 고인의 위업을 알도록 했다.

오로지 신에게 인간의 뜻을 전하고자 할 때는 비문 자체를 전서로 썼다. 미수(眉) 허목(許穆)이 쓴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가 대표적이다. 허목이 삼척부사로 재임하고 있던 당시 해일로 바닷물이 삼척까지 넘어 들어와 피해가 막심하였다. 이에 허목이 동해신을 예찬하는 노래를 지어 전서로 비를 세우니,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허목이 동해신에게 삼척 사람들의 마음을 간절히 담아 ‘전서’로 전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고 믿었다.

향찰(鄕札)로 표기된 향가에도 신에게 전하는 인간의 마음이 담겨있다. 일연이 삼국유사에서 “신라 사람들은 향가를 숭상한 지 오래되었다. 대개 시(詩)와 송(頌) 같은 류일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킨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라고 한 데서 이를 알 수 있다.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는 데 사용된 향가는 주술성이 매우 강하였다. 찬기파랑가, 모죽지랑가, 제망매가 등 죽은 사람들을 위로 하고 찬양하기 위해 향가를 지어 불렀던 것도 이와 관련 있다.

도솔가를 지어 두 해가 나타난 재앙을 물리치고자 했고, 혜성가를 불러 하늘의 혜성이 사라지게 하였으며, 처용가를 지어 아내의 몸속에 들어가 있던 병귀(病鬼)를 불러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원가는 잣나무를 마르게 하여 임금이 신의를 깨닫게 하였고, 도천수대비가는 눈먼 아이에게 광명을 획득할 수 있게 했다. 이처럼 향찰은 한문이 갖고 있는 전통 문법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되어 있었으므로, 오히려 신에게 전하는 인간의 언어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나약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이다. 이 때문에 일상어와는 전혀 다른 진언을 만드는가 하면, 비석에 전서를 새기기도 하고, 향찰로 된 노래를 지어 부르기도 했다. 특히 향가는 향찰이라는 최초의 우리말 표기 방식으로 부른 노래라는 측면에서, 우리말과 한국문학이 갖는 신성성을 확보하고 있다. 즉 우리말을 통해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켰던 것이다.

요즘 우리말은 병들어 신음하고 있다. 신성성 역시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어느 별빛이 있어, 나의 우리말 노랫소리를 듣고 이 언덕으로 내려와 춤을 출까. 별마저 자신을 부르는 인간의 언어를 잊어버리고 말았는가!
정우락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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