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나를 위해 용서하는 마음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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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27  |  수정 2020-09-09 14:32  |  발행일 2019-08-27 제25면
[문화산책] 나를 위해 용서하는 마음
류지희 <작가&디자이너>

‘용서는 어떤 관계에서도 사랑의 최고 형태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며, 용서하는 사람은 더욱더 강한 사람이다.’(욜란다 하디드)

어릴 때는 용서하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놀이터에서 친구와 놀다가 장난감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다투었던 적이 있다. 그 친구가 먼저 내 것을 빼앗아간 상황이었는데도 엄마는 양보해주라고 하셨다. 져 주는 게 이기는 것이라며. 누군가 내게 잘못을 해도 져주고 용서해주는 것이 어떻게 더 좋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가끔 뉴스에서 이해할 수 없는 기사를 보게 될 때도 있다. 자신의 딸을 무참하게 성폭행한 강간범을 용서하겠다는 딸의 아버지. 묻지마 테러로 인해 극적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온몸에 큰 상처를 입은 청년이 테러범을 용서하겠다는 기사. 사실 상식적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이다. 하지만 테러를 당한 청년은 기사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당신들은 악마 같은 일을 저질렀다.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의미 있는 생명을 앗아갔다. 나 역시 그날의 상처를 여전히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당신들을 용서하기로 했다. 용서는 오롯이 우리의 몫이라는 점을 배웠다. 두려움 속에 살지 않고 하루하루를 감사히 여기며 살아 나가겠다.”

온 몸에 흰 붕대를 칭칭 감고 눈만 간신히 내어 놓은 청년의 입에서 어떻게 ‘용서’라는 단어가 나올 수 있을까 싶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몇 년 뒤 청년은 병원 치료와 재활을 거쳐 건강을 되찾은 것은 물론 자신의 이야기들로 많은 이들에게 선영향력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는 용서를 통해 지금의 더 멋진 자신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만약 그가 과거의 아픔과 분노에 가득 찬 날들을 보냈다면 지금쯤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버드 의대 조지 베일런트는 용서와 구분되어야 할 몇 가지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나, 용서는 범죄에 대한 관용을 의미하지 않는다. 둘, 용서는 망각을 의미하지 않는다. 셋, 용서는 지나간 고통을 제거하지 않는다. 넷, 용서는 가해자를 너그러이 봐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독한 고통과 배신감을 겪으면서도 우리가 용서를 하는 이유는 바로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하는 마음’ 때문이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공감, 혹은 자기 연민에 빠져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그릴 줄 아는 능력과 또 용기가 필요하다. 다만, 늘 용서만 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생각하여 내리는 결정이다. 어느 순간에도 우리는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하므로.류지희 <작가&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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