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독립영화, 한국사회의 거울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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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28  |  수정 2020-09-09 14:32  |  발행일 2019-08-28 제23면
[문화산책] 독립영화, 한국사회의 거울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올해로 20회를 맞은 대구단편영화제가 이틀 전 성황리에 끝났다. 지역 대표 영화제이자 어느새 전국에서 주목받는 단편독립영화 발굴현장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한국사회 다양한 단면과 논란을 다루는 다채로운 작품들이 대거 등장했고, 지역을 배경으로 한 신진영화인들의 작업 또한 완성도가 높았다. 특히 청년영화인들이 동세대 고민과 세태를 담아낸 작업들에 자주 눈길이 갔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요즘 청년세대는 고달프다. 부모세대의 신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이 세대에는 먹히지 않는다. 정규직은 과거의 신분제 계급으로 인식되고, 개천에서 용 나지 않는 현실에서 입시와 취업은 바늘귀에 다름없다. 저성장과 불황의 그림자 아래에서 감히 좁은 문을 넓히자고는 못하면서 누가 새치기를 할까봐 불안에 떤다. 그러나 자기 앞에 불건전한 기회가 온다면 타인에게 일갈하는 것처럼 자신에게도 공정할 수 있을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황이 학원가와 고시촌에서 펼쳐진다. 그런 사회적 현실을 2019년 대구단편영화제의 상영작들에서 다양한 방식과 소재로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노량대첩’이라는 작품이 인상에 남는다. 노량진 공시생들은 절박하다. 내가 합격하지 못하는 것은 다 남 탓이다. 비좁은 터널과 불투명한 관행은 그런 의심을 부추긴다. 기약없이 긴 줄을 서는데 누가 근처라도 지나가면 혹시 끼어들지 않을까 덜컥 겁이 난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초조함은 앞자리 경쟁자가 눈치없이 모자를 쓰거나 볼펜을 돌리기 때문이다. 독서실에서 정숙해 달라는 쪽지는 인터넷에서 수백수천의 비슷한 체험담 리플로 돌아온다.

‘노량대첩’은 그 살벌한 시류를 블랙코미디와 슬랩스틱 개그로 소화해 낸다. 학원 앞자리에서 방울 달린 모자가 깔짝거리면 불편하고 거슬리는 것은 당연지사. 마치 운동선수가 시합 전 금기에 집착하는 것처럼 ‘나’의 절박함은 ‘남’에 대한 배려가 끼어들 일말의 틈새를 불허한다. 경범죄 딱지 하나에 몇 년간 고생한 시험결과가 좌우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살벌한 위협이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매일 뉴스로 접하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기행이나 우발적 폭력이 아주 사소한 스트레스에서 출발해 확장되는 구조가 정밀하게 묘사된다.

이 재기발랄한 단편영화는 그런 ‘나’들의 소우주가 충돌하며 파열하는, ‘을’과 ‘을’들의 약육강식 생존경쟁을 개그로 출발해 비애로 마무리짓는 통찰을 제공한다. 그래서 다른 모든 건 자기 뜻대로 못하지만,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는 방울 제거에는 성공한 주인공의 헛웃음과 비련이 교차하는 마지막 클로즈업은 너무 슬프다. 한국 독립영화의 경향을 좇다보면 우리 사회의 거울을 발견할 수 있다. 최근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자녀 관련 논란은 그런 우리 사회가 개인들에게 전가한 채 책임은 미루면서 폭주하는 ‘과잉(들)’의 단면을 씁쓸하게 확인하는 계기일 것이다.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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