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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상<시인> |
아고라의 철학자들이 소크라테스에게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철학자들이 비웃자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지만, 너희들은 너희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자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는 것이 무엇입니까”라는 안회의 물음에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벽암록’ 제1칙에 달마대사와 양무제의 대화가 나옵니다. 양무제가 달마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이 불법의 근본이 되는 성스러운 진리입니까?” 달마는 말했습니다. “만법은 텅 빈 것, 성스럽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 양무제는 다시 물었습니다. “지금 나와 마주하고 있는 그대는 누구입니까?” 달마는 말했습니다. “모릅니다.”
우주 안에는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암흑물질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앞으로 우주의 팽창과 수축은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말합니다. 물리학으로 파악 가능한 물질이 4.9%, 암흑물질이 26.8%, 무언지 모르는 물질이 68.3%랍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문명과 과학을 총동원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물질은 겨우 5%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아는 것이 힘이라고 배웠습니다. 정말 아는 것이 힘일까요. 세상을 다 아는 것 같지만 차원을 달리해서 보면 사실 무엇을 안다는 말인가요? 우리가 아는 지식은 마치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영화와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영화는 텅 빈 스크린이 없으면 상영될 수가 없지요. 스크린이 울고 웃는 영화를 드러내는 바탕이 되듯이, 모르는 것을 바탕으로 삼아야 아는 것이 비로소 드러나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와 공자와 달마대사는 자신을 먼저 성찰한 현자들입니다. 눈알을 안으로 박고 자기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드물고, 남의 허물만 탓하는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보이는 것들만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에 우리는 진리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자기 자신도 제대로 모르면서 우리는 남을 평가하고 비난합니다. 우리가 아는 그 사람이 진짜 그 사람일까요. 내가 자식을 다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내가 부모를, 친구를, 남편을, 아내를 다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모를 뿐, 오직 모를 뿐에서 출발해야 우리는 타자 앞에 겸손해져 진실에 닿을 수 있습니다. 진리는 온 우주에 무시무종의 존재로 편만해 있습니다. 눈앞의 그 일을 아직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대답을 듣고 싶은 가을날입니다.
김수상<시인>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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