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인생의 다큐멘터리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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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23  |  수정 2020-09-09 14:44  |  발행일 2019-09-23 제22면
20190923
박연정<빛글 협동조합 대표>

다큐멘터리 중에서도 어떤 이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을 ‘휴먼 다큐멘터리’라고 한다. 나눔을 실천해온 사람, 오랜 실패 끝에 값진 성공을 거둔 사람, 파란만장한 인생길을 걸어온 사람까지 사실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휴먼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95년부터 방송 일을 시작했으니 벌써 20년 하고도 몇 해가 더 지났다. 참 많은 이들의 인생을 방송으로 담았지만 그중에서도 기억이 선명한 한 사람이 있다.

EBS에서 꼬맹이 작가 시절을 보내던 그 때, 어린이날 특집으로 제작된 프로그램이었다. 후천적 질병으로 늘 누워서 지내야만 하는 아버지는 매일매일 아이들에게 편지를 썼다. 자식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었기에 그 편지는 그냥 편지가 아니라 가슴 아픈 사랑이었다. 아이들 입학식에 가고, 퇴근길 붕어빵을 사들고 오고, 매일매일의 소소한 일조차 이루지 못할 ‘소망’일 뿐인 아버지. 그 아버지의 평생소원은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을 가는 일이었다. 어느 어린이날, 우리는 이 가족들과 함께 소풍을 떠났다. 강아지 마냥 뛰어노는 아이들을 한순간이라도 놓칠까 눈을 떼지 못하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촬영하던 우리는 돌아가면서 어느 구석 뒤로 숨어 눈물을 훔쳤다.

이렇게 소소한 일상의 모습을 통해 묵직한 울림을 선물하는 것, 그것이 휴먼다큐멘터리의 매력이다. 사실 제작진의 입장에서 휴먼다큐멘터리는 참 어려운 장르다. 한 시간 남짓한 동안에 어떤 이의 인생길을 보여준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객관적 진실만을 전달하는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과 달리 휴먼 다큐멘터리는 제작진의 주관적인 의도가 담기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의도 역시 객관적 진실에 의거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 난 ‘깔때기’라는 표현을 자주 한다. 소소한 이야기들을 담지만 모든 스토리는 깔때기를 통과하듯 하나의 주제를 향해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주제가 사랑이어도 좋고 모험심이어도 좋다. 어느 하나의 주제를 향해서 이야기를 풀어가야 제대로 된 휴먼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진다.

생각이 무르익기 좋은 계절이다. 만약 지금 내가 걷는 인생길을 ‘휴먼 다큐멘터리’로 담는다면 내 인생의 주제는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주어진 대로 앞만 보고 걸어가다 문득 혼란스러워지기 전에 말이다. 내 인생의 주제를 정한 다음, 황혼의 해처럼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일 수 있는 내 인생의 다큐멘터리를 살아보자. 신나게 그리고 열심히.

 

 박연정 (빛글 협동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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