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마지막 자세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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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26  |  수정 2020-09-09 14:42  |  발행일 2019-09-26 제21면
[문화산책] 마지막 자세

삶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러시아 시인 만델스탐은 “인간의 입술은 그가 마지막으로 발음한 단어의 형태를 보존한다”고 했지요. 또 고인이 된 오규원 시인은 ‘죽고 난 뒤의 팬티’가 깨끗할 것인지 아닌지를 걱정했습니다. 죽음 이후를 생각하는 시인의 성찰 앞에 저절로 숙연해집니다. 삶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정말 무엇일까요. 돈도, 땅도, 건물도 아닌 어떤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입술의 형태를 생각해봅니다. 마지막 입술의 모양이 원망하는 마음의 모양이 되면 어쩔까 두렵기만 합니다. 사랑의 말이 마지막으로 발음한 단어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습(習)이 죽음까지 따라간다고 생각하니 참 무섭습니다. 증오로 살면 증오의 자세를 남기고 사랑으로 살면 사랑의 자세를 남기겠지요. 교통사고와 같은 우연한 사고로 죽을 수도 있으니 지금 이 순간의 자세가 마지막 자세가 되는 셈입니다. 자세를 얘기하다 보니 떠오르는 단어가 있네요. 폼(form)과 에티튜드(attitude)가 그것입니다. 두 단어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폼이 삶에 밀착하지 못하고 겉멋이나 부리는 허세 같은 것이라면, 에티튜드는 사람과 사물에 대한 진실한 마음가짐, 태도 같은 것이 아닐까요.

중국 선종의 역사서인 ‘전등록’에는 선사들의 다양한 죽음의 자세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임제종 황룡파의 화산덕보(禾山德普) 선사는 입적하기 직전에 제자들을 모두 불러놓고 자신의 제사를 지내도록 했습니다. 한 시간 이상 제자들이 올리는 음식과 절을 모두 받고 나서 “내일 맑은 하늘에 눈이 내리면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정말 다음 날 눈이 내리자, 향을 사르고 단정히 앉아서 입적했다고 합니다. 등은봉(鄧隱峰) 선사는 마조도일 선사의 제자인데 물구나무를 서서 입적했다고 합니다.

누워서 죽든, 앉아서 죽든 마지막 자세는 남습니다. 6조 혜능 선사는 적멸에 들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일렀습니다. “그대들은 잘 있으라. 이제 그대들과 헤어지련다. 내가 가버린 뒤에 세속의 인정으로 슬피 울거나 사람들의 조문과 돈과 비단 같은 것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라. 상복을 입지 말라. 그런 짓은 부처의 가르침이 아니며 내 제자의 행동이 아니니라. 내가 간 뒤에도 다만 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수행하면, 내가 있을 때와 마찬가지다.” 이렇듯 자세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통하여 전해집니다. 진정한 전법(傳法)인 셈이지요.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여무는 가을날입니다. 당신은 어떤 마지막 자세와 입술의 모양을 물살처럼 흐르는 이 유정한 세상에 남기겠습니까.

김수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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