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어린아이처럼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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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03  |  수정 2020-09-09 15:04  |  발행일 2019-10-03 제19면
[문화산책] 어린아이처럼
김수상 <시인>

강보에 싸인 어린아이의 눈을 들여다본 적이 있습니다. 눈빛이 먹머루 같습니다. 아이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이의 눈에 자신의 눈을 맞춥니다. 들여다보는 사람의 마음이 저절로 맑아집니다. 어떤 분별과 망상도 없는 눈빛입니다. 언어를 배우고 지식을 습득하고 나서부터 우리의 눈빛은 달라집니다. 거짓말도 그때부터 하게 됩니다. 거짓말을 하면서 눈을 똑바로 맞추는 사람은 드뭅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화하는 것이 불편해집니다. 속마음을 들킬까 두려워지니 상대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라캉에 따르면 생후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의 유아는 자신의 동작과 거울 속에 비친 동작과의 관계를 의식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상상계 혹은 거울 단계라고 하는데, 상징계인 법과 언어의 질서로 들어가기 전의 단계입니다. 우리는 언어를 배우면서 이미지의 세계에서 벗어나 언어로 관계하는 세계에 진입합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한 눈빛을 잃어버리는 것이지요. 우리는 언어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분별하는 법을 배웁니다. 나와 타자,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진실과 허위의 세계가 거기에서 생겨납니다.

피카소는 “나는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법을 알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고 말했습니다. 또 ‘장자’의 경상초편(庚桑楚篇)에는 노자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어린아이가 종일토록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 것은 조화가 지극하기 때문이다. 종일토록 주먹을 쥐고 있어도 손이 저리지 않는 것은 그것이 본성과 합치되기 때문이고, 종일토록 눈을 뜨고 보아도 깜빡이지 않는 것은 집착하는 대상이 밖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길을 떠나도 가는 곳을 알지 못하고 머물러 있어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며, 다른 사물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물결치는 대로 함께 흘러가는 것이 생명을 보위하는 법칙이다.”

어린아이는 대상에 본성이 온전하게 합일하는 존재입니다. 기쁨이 오면 기쁨으로 맞이하고 슬픔이 오면 슬픔으로 맞이합니다. 배가 고프면 울고 배가 부르면 웃습니다. 우리는 삶을 있는 그대로의 놀이로 받아들이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대상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자기의 말만 하고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습니다. 대상을 귀한 손님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거지 취급을 하며 문전박대하기 일쑤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아이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분별심이라는 쓰레기에 가려져 본래의 무구(無垢)한 마음이 드러나지 않은 것뿐입니다. 어린아이는 무엇이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야 비로소 우리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우리의 본래 모습입니다. 잃어버린 그 시간 속으로 풍덩, 뛰어들고 싶습니다.
김수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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