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꼰대지수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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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16  |  수정 2020-09-09 15:00  |  발행일 2019-10-16 제25면
[문화산책] 꼰대지수

몇년 전 20대 초반의 후배들이 왠지 조금 나를 어려워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내 나이가 20대보다 40대에 가깝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무릎을 탁 친 적이 있다. 예전엔 나보다 어린 사람과 친해지는데 공을 들인다는 생각을 안 했는데, 요즘은 공을 들여야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100세 시대라 요즘 30~40대는 웬만한 20대처럼 보인다지만,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니라 뭔가 모를 마음의 오묘한 갭이 있는 것이다. 나름 사람들과 소통이 잘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나는 ‘꼰대’(비속어인 줄은 알지만 이보다 더 찰떡같은 표현을 찾기가 힘들다)가 되는 나이가 된 것이다. 10~20대 중에도 정말 신기할 정도로 권위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더러 있긴 하지만 그냥 대부분은 나이가 꼰대력을 상승시킨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는 꼰대가 되지 말자인데, 여기서 또 현타(‘현실 자각 타임’을 줄여 이르는 말)가 왔다. ‘어디까지가 꼰대이고, 어디까지가 예의인가’이다.

알게 모르게 나도 나의 윗세대들을 보면서 판단한 기준이 있긴 하다. 물론 난 내세울 권위가 없지만 그래도 나름껏 마음속으로 이러저런 것은 예의이고 이 이상은 권위적 행위라고 나누고 있긴 한데, 이것은 진짜 나의 기준일 뿐이다. 하물며 비슷한 나이 때의 사람과 얘기를 해봐도 그 기준이 천차만별이다. 어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서로 얘기하며 좋은 방향을 잡아가면 좋겠지만, 이미 일이 터져버렸을 때는 아무래도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 일방적인 충고를 할 때가 많다. 이때는 ‘이렇게 이렇게 해야지’라는 결론을 내어주면 이게 설득력이 생길 때도 있는데 어떨 때는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나는 정말 확신에 찬 진심어린 충고를 했는데, 상대방에게 먹히지 않을 때 내 판단이 정말 맞았나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굳이 할 필요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한다. 굳이 애정을 쏟아가며 타인에게 향하는 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내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라…. 그래! 내 꼰대력이 상승하고 있는 거겠지?

그래도 한가지 다행은 아직은 나에게 그게 뭐든 해답을 얻기 위해 질문을 해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진정한 꼰대라면 진짜 뭐 특별히 잘 보일 필요없는 나에게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지 않은가.

모두의 생각 기준을 맞출 수는 없다.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래도 꼰대력 낮은 괜찮은 어른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자. 내 꼰대 지수는 이것으로 정한다. 참어른이 되기 위해 오늘도 방황하는 나다.

이지영 (극단 한울림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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