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음치들을 위한 공터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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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06  |  수정 2020-09-09 14:51  |  발행일 2019-11-06 제23면
[문화산책] 음치들을 위한 공터

아이유의 ‘좋은 날’이 내 차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요즘 노래 맞아?” 친구가 물었다. 그 곡이 담긴 폴더 이름이 ‘요즘 노래’였다. “다른 폴더 볼래?” 내가 폴더를 차례대로 넘겼다. 비틀스, 김광석, 조용필, 박인희, 나나 무스쿠리 등의 이름이 창에 떴다가 사라졌다. “요즘 노래 맞네.”

술을 마시면 그 친구는 노래방을 가자고 한다. 온 몸으로 저항하다 내가 질 때가 있다. 패잔병이 된 심정으로 노래방에 가면 그는 최신곡만 부른다. 지루하기 짝이 없다. ‘내가 아는 노래 좀 부르라고.’

내가 대학 3학년 때까지는 노래방이라는 게 없었다. 여럿이 잔디밭에 앉아 게임을 하거나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노래를 불렀다. 손뼉으로 장단을 맞추며 옆에선 추임새를 넣고 어깨춤을 추기도 했다. 나는 태생이 ‘음치’지만 중간에 멘트를 넣기도 하고 과장된 몸짓과 후렴으로 사람들을 웃겼다. 음악(音樂)이란 소리를 통한 즐거움이 목적 아니던가. 으레 마지막은 ‘아침이슬’과 같은 잔잔한 노래를 제창하는 것으로 끝을 맺곤 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노래방이 생기고 난 뒤로 구시대의 유물처럼 돼 버렸다. 음정과 박자를 전혀 못 맞추는 나는 노래방에 가는 게 싫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노래를 부르면 자막으로 나오는 가사와 한 소절 이상 차이가 나기도 했다. ‘넌 노래 안 해?’ 이 소리가 나올까 봐 항상 조마조마했다.

15년 전쯤 베네치아에 갔을 때 물 위에 떠 있는 웅장한 건물과 옛날 우리의 골목처럼 좁다란 물길을 배를 타고 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하지만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베네치아에서 만난 오페라 배우가 어스름이 질 무렵 놀러 가자고 제안을 했다. 베네치아의 진짜 모습은 밤에 있다면서. 그분은 돼지고기를 튀겨 만든 베네치아 정통 안주와 캔맥주를 한 아름이나 사서 나를 광장으로 데리고 갔다.

“이탈리아까지 와서 오페라 한번 안 보고 가는 것은 정말 너무한 겁니다.” 그는 한참을 오페라와 이탈리아 문화에 대해 설명했다. 베네치아 사람들에겐 일상이겠지만 나에게는 하룻밤의 꿈과 같은 풍경이었다.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군데군데 모여앉아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젊은이들, 밤늦도록 뜀박질을 하며 노는 아이들, 왁자지껄하게 웃는 노인들이 한데 어우러진 살아있는 광장이었다. 그런 공간에서라면 음치인 나도 예전처럼 노래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그 친구를 위해서 노래방도 굉장히 필요하겠지만,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동네마다 텅 빈 공간이 하나 정도 있으면 좋겠다. 오페라극장이 있는 베네치아에도 동네마다 광장이 있는 것처럼.

송영인 (영남일보 문학상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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