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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영인(영남일보 문학상 당선자) |
마감은 다가오는데 써야 할 거리는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은 걷는 발의 뒤꿈치에서 나온다’는 니체의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하릴없이 여기저기를 걸었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니체는 왜 발가락이 아니라 뒤꿈치라고 했을까, 궁금했다. 지나온 과거 속에서 생각을 찾으라는 암시가 아닐까. 혹시나 해서 한때 많은 시간을 보냈던, 예전에 살던 동네에 있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은퇴하면 산책할 수 있는 공원과 도서관이 가까운 곳에 살고 싶다. 요즘 도서관은 책을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DVD로 영화도 볼 수 있고 인터넷도 할 수 있다. 점심값만 가지고 가면 모든 게 무료인 놀이터다.
도서관에 들어서서 한국문학 코너에서 책 구경을 하고 있는데 한 어르신이 내 맞은편 서가로 다가왔다. 그 움직임이 너무도 느렸다. 지팡이를 짚고 바닥을 쓸듯이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마치 슬로비디오를 보는 것 같았다. 그분은 책꽂이에서 책을 한 권 뽑아 들더니 서가 끝에 있는 의자에 앉으셨다. 나도 늙어서 아무리 느린 걸음이라도 움직일 수만 있으면 저 분처럼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서가를 빠져나오자 또 한 분의 어르신이 전화 통화를 하고 계셨다. 그분 옆 책상에서 젊은 사람 몇 명이 공부하고 있었다. 사서가 황급히 어르신께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그분은 전화를 끊고 연신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영국 케임브리지, 시티센터에 있는 도서관에 한 달 정도 다닌 적이 있다. 그곳은 ‘도서관은 조용해야 한다’는 나의 통념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누구든 자유롭게 대화를 하거나 전화 통화를 했다. 그런데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데 전혀 방해되지 않았다. 단지 테이블 간격이 넓은 것 빼고는 우리나라 도서관과 별반 다른 게 없었다. 그 도서관에는 많은 노인들이 신문이나 책을 읽고 있었다. 심지어 4층에 있는 카페테리아에서 차를 사 와서 테이블에 두고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소음이 있는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히려 백색소음이 집중력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너무 조용한 공간에서는 자신의 행동도 조심스러울 뿐 아니라 남의 사소한 움직임이나 소리에도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공동의 공간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는 필수겠지만, 도서관에서 다른 사람의 행동에 좀 더 허용적이어도 괜찮지 않을까.
19세기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에서는 산보객들이 강아지 대신 거북이를 줄에 매달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나도 나이가 들면 그들처럼 느릿느릿 산책하고 도서관에서 놀고 싶다.
송영인(영남일보 문학상 당선자)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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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도서관이라는 놀이터](https://www.yeongnam.com/mnt/file/201912/20191218.01023083204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