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20세기 엄마가 21세기 딸에게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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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20  |  수정 2020-09-09 14:31  |  발행일 2019-12-20 제16면
[문화산책] 20세기 엄마가 21세기 딸에게
서상희<크레텍책임 홍보부장>

아침 출근길, 가끔은 딸이 이런 문자를 보낸다. ‘엄마 힘내. 오늘도 파이팅.’ 처음에는 감동이었고 떨어져 있어보니 철이 드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얘가 정말 자기가 원해서 하는가, 아님 이렇게 하면 엄마가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하는가라는 의문이 일었다. 전부터 하던 생각을 보태 문자를 보냈다.

“딸! 효도하지마. 엄마한테 잘하려고 하지 말고, 커서 갚아야지 생각도 말고, 엄마한테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말아. 넌, 너 하고 싶은 거 해. 엄만 엄마 하고 싶은 거 할 거야.”

세상의 모든 딸들은 ‘엄마 불쌍병’에 걸린다. 여성에 대한 서사는 전통적으로 한이 서리고 갖은 고초가 따라다닌다. 세상은 그 뒤에 숨은 눈물을 드러내 감동을 생산해왔다. 그 영향으로 현대의 딸들도 엄마라는 이름 뒤에 당연히 설움의 서사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징징대며 나의 생이 한스럽다고, 엄마의 삶은 고단했다고 하면 서로의 삶이 달라질까. 나 역시 엄마불쌍병 환자였다. 종부였던 엄마는 늘 제삿밥 나물국물이 치마 끝에 마를 날이 없었다. 그런 엄마를 내가 커서 보상해주겠다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 또한 엄마의 삶이었고, 내가 보상해줄 수 있는 거라곤 내 삶을 엄마보다 낫게 살아주는 길 밖에 없었다.

난 내 딸이 자신에게 솔직하고 자신답게 사는 길을 찾았으면 한다. 남들이 부여한 프레임에 갇혀 배역 수행으로만 소진되지 않아야 하고, 세상의 불합리한 것들에 자신의 언어로 저항하기 바란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이가 열이 나는 밤을 꼬박 지새운 것도 그저 내 삶의 한 과정이었고, 직장눈치를 보며 아이 장기자랑 대회에 간 것도 롤러코스터보다 짜릿한 경험이었다. 그 비싸다는 사교육 선생을 수소문 한 것도 내 인생 에피소드일 뿐이다. 돌려받지 않아도 된다. 그것 하나 갚느라고 또 하나의 삶이 쪼그라들거나 압박 받지 않길 바란다.

엄마 불쌍병은 여성의 경우 대체로 직장에서 ‘착함병’으로 재발된다. 당차게 일을 밀어붙이고 그 성과를 본인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함께 해요 우리” 같은 맘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만다. “제가 했어요!” “하고 싶어요” 혹은 “싫어요” “꺼져” 같은 속내를 드러낸들 21세기와 어울리지 않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최근 홀딱 반한 뮤지션 황소윤. 중성적인 매력에 몽환적인 록과 R&B의 적절한 믹싱으로 ‘이런 새로운 인간이 출현해 우주 같은 걸 들려주는구나’ 싶었다. 그의 노래 ‘FNTSY’ 중 맘에 드는 구절이 있다.

“난 어느 별보다도 빛나지/ 우리에겐 더는 아냐 fantasy/ 이 땅은 우리 거 넌 뭘 겁내/ 걱정마 ma sister/ 방금 전 배웅했어 21세기”

딸, 너는 자유다. 20세기 엄마를 신경 쓰지마.

서상희<크레텍책임 홍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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