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역사왜곡 일파만파…"철저한 고증·자기검열 거쳐라"

  • 윤용섭
  • |
  • 입력 2021-04-01  |  수정 2021-04-01 08:52  |  발행일 2021-04-01 제15면
중국풍 설정 논란 '조선구마사'

방송 2회만에 전격 폐지 결정

김치·한복 등 신동북공정 따른

대중 反中정서 간과 반발 불러

中소설 원작 드라마 전전긍긍

JTBC '설강화'도 구설수 올라

역사 왜곡·中자본 투자 눈총

일부선 창작력 위축될까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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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사태로 국내 드라마 제작 시스템에 대한 재점검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당초 16부작으로 기획된 이 드라마는 역사 왜곡과 중국풍 설정으로 시청자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방송 2회 만에 전격 폐지가 결정됐다. 국내 제작 드라마 중 가장 이례적인 중단 사례다. 첫 방송이 나간 후 불과 나흘 만에 신속히 이뤄졌다는 점에서 드라마를 둘러싼 논란이 얼마나 뜨겁고 심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논란의 쟁점과 해결 방안을 모색해본다.

◆역사 왜곡에 시청자들 뿔났다

다큐멘터리를 제외하면 영화와 드라마 등 대부분의 창작물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지해 이야기를 채워간다. 팩트에 기반한 사극과 시대극이라 할지라도 역사적 사실만으로 100% 이야기를 구성할 수 없기에 일정 부분 상상의 날개를 편다.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가미한 '팩션'은 그 점에서 창작자들에게 매력적인 소재다. 역사책으로 접하던 과거의 모습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만큼 가상의 공간과 이야기를 극적 효과를 위한 다양한 장치로 꾸밀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실존 인물과 시대를 특정 짓는 순간 표현의 제약이 따른다. '조선구마사'는 바로 이 점을 간과했다.

대중은 창작물로 완성된 사극과 시대극을 통해 간접적이지만 그 시대를 보고 읽는다. 대중적 영향력이 높은 콘텐츠에 고증은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역사를 심각하게 왜곡하거나 정면으로 부정하는 접근이 아니라면 너무 꼼꼼한 잣대보다 다소의 유연성도 필요하다. 자칫 창작력과 확장성이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선구마사'가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 이유는 뭘까.

중국풍 설정 논란 '조선구마사'
방송 2회만에 전격 폐지 결정
김치·한복 등 신동북공정 따른
대중 反中정서 간과 반발 불러


방송 직후 쏟아진 논란을 정리해보면 핵심은 역사 왜곡이다. 시놉시스부터 태조 이성계가 서역의 구마사와 악령에게 영혼을 지배당한 '생시'의 도움을 받아 조선 건국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언급돼 있다. 조선의 건국 과정 자체를 판타지적 허구로 만든 셈이다. 뿐만 아니라 태종이 환각을 보고 백성을 도륙하고, 충녕대군(세종대왕)이 시종처럼 구석에 서서 천주교 신부에게 술을 따르고, 목조(이성계 고조부)에 대해선 "기생에 빠져 야반도주한 분이다. 그 피가 어디 가겠느냐"고 비하하는 등 드라마적 설정을 감안하더라도 수위를 넘어섰다. 여기에 중국식 소품과 음식 등도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최근 한복과 김치가 자국의 문화라 우기는 중국의 '신(新)동북공정'으로 반중(反中) 정서가 팽배해 있는 대중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철저한 고증과 자기 검열 필요

과거에도 몇몇 사극과 시대극이 역사 왜곡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설 중 신미 대사에 초점을 맞춰 각색한 영화 '나랏말싸미'가 그랬고, '덕혜옹주'와 '청연'이 개봉됐을 때도 주인공의 해석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명량'은 개봉 직후 배설 장군의 후손들로부터 피소당한 바 있다. 역사는 풀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같은 사안을 놓고 다르게 평가되기도 한다. 학계에서조차 이견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그래서 역사를 다루는 작품일수록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건 철저한 고증과 자기 검열이다.

최근 그 연장선에서 '조선구마사'의 초점은 극본을 쓴 박계옥 작가에게 모인다. 박 작가는 최근 종영된 tvN 드라마 '철인왕후'에서도 "조선왕조실록 다 지라시네" "언제까지 종묘제례악을 추게 할 거야" 등의 대사로 조선 역사를 희화화했다. 네티즌은 박 작가가 중국 콘텐츠 제작사 쟈핑픽처스와 계약했기 때문에 '조선구마사' 속 역사 왜곡이 "중국 자본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라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이에 제작사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고, 순수 국내 자본으로 제작됐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았다.

中소설 원작 드라마 전전긍긍
JTBC '설강화'도 구설수 올라
역사 왜곡·中자본 투자 눈총
일부선 창작력 위축될까 우려


당장 중국 작품을 원작 삼은 드라마와 시대극에 미칠 여파에 관계자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JTBC '설강화'는 방송 전 공개된 시놉시스만으로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1980년 군사 정권을 배경으로 남북 대치 상황에서의 대선 정국을 풍자하는 블랙코미디지만 제작사인 JTBC스튜디오가 중국 텐센트로부터 1천억원 투자를 받은 것과 관련해 반중 여론이 번지고 있는 것이다.

tvN와 JTBC에서 각각 하반기에 방송할 '잠중록'과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는 중국의 인기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는 이유로 가장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원작의 콘셉트만 차용하고 내용은 완전히 새롭게 바뀌지만 고민이 없을 수 없다"고 토로한다. 이밖에 중국 대표 OTT 아이치이가 제작에 참여한 tvN '간 떨어지는 동거', 한·중 군주가 연적이 되는 드라마 '해시의 신루' 역시 제작 배경과 설정만으로도 눈총을 받고 있다.

'조선구마사' 사태는 시장에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역사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거나 대중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제작 중단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김광원 대중문화평론가는 "역사적 사실을 다룸에 있어 허구의 세계를 그리는 창작과, 정사(正史)에 픽션을 버무려 판타지로 포장하는 작업은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기획 단계에서부터 대본 집필, 연출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고증과 감수를 작동할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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