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老稚園(노치원)

  • 장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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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8-30   |  발행일 2021-08-30 제31면   |  수정 2021-08-30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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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택 논설위원

최근 경북 문경에 있는 절친의 부친 상가에 간 적이 있다. 시중은행 고위 간부를 지냈지만 문상객 숫자보다 조화가 더 많았다. 코로나19가 가져온 우울한 변화다. 몇 달 전 요양병원에 입원했다가 돌아가셨다. 코로나 방역 지침 탓에 마지막 임종조차 지켜보지 못했다고 했다. 연로하면 치매가 찾아온다. 주간요양시설을 거쳐 요양병원에서 운명하신다.

얼마 전 대구 동구 팔공산 자락에 있는 아파트 단지 내 유치원이 폐업했다. 700여 가구의 대단지로, 시내를 오가는 셔틀버스도 있었다. 학령인구가 줄다 보니 유치원이 주간 요양원으로 업종 변경을 했다. 노치원(老稚園)이 된 거다. 30여 전만 해도 인근 초등 교실을 증설할 정도였다. 노령 인구가 늘고 출생률이 감소하면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최근 감사원이 발표한 인구 관련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인구는 조사 시점인 2017년 5천136만명에서 50년이 지난 2067년에는 3천689만명, 100년 뒤인 2117년에는 1천510만명으로 준다고 했다. 100년 후면 100년 전 인구수로 감소된다. 대구의 경우 2017년 246만 명에서 100년 후엔 54만 명, 경북은 268만 명에서 70만 명으로 각각 급감한다. 정작 숫자를 받아드니 눈앞이 캄캄하다.

60~70대 나이면 대학·고교졸업 당시인 40~50년 전의 일을 또렷이 기억한다. 베이비붐 시대엔 한 해 90만 명 넘게 태어났다. 대입예비고사에 재수생 포함, 100여만 명이 응시했다. 이 당시 젊은 주부가 갓난아이는 등에 업고 양손에 두 아이 손을 잡고 버스를 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이를 보고 버스 운전기사는 "애는 되게 많이 낳았네"라고 핀잔주는 광경이 흔했다.

지난해 국내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 출생아 수는 27만2천300명이다. 암울하다. 대책 없이 방방곡곡 뚫어놓은 도로를 비롯한 각종 인프라는 어쩌나.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공설운동장과 청사를 건립했지만 세금 먹는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대구섬유회관 인근은 한때 대구의 중심지였다. 이곳 주 도로변 1층 가게 앞과 보도블록 사이에 풀이 돋아있는 모습을 본다. 을씨년스럽다. 조만간 흉물이 된다는 전조(前兆)다. 변두리의 경우 코로나 이전에도 밤 10시만 되면 적막강산이다. 출산율 제고를 위해 15년간 무려 200조 원 넘는 예산을 퍼부었지만 헛심만 썼다. ‘지방분권’은 정권을 잡기 위해 내건 화두였지만 늘 공염불(空念佛)이 됐다. 집권자의 눈엔 수도권 일극주의(一極主義)만 있다. 좋은 일자리가 있는 수도권 대학으로 인재가 몰린다. 주택공급이 부족하니 수도권 부동산시장은 ‘불장’이 됐다. 수입이 빤하다 보니 혼인적령기에선 비혼(非婚)과 만혼(晩婚)이 대세다.

경제 위기 연구분야에서 국내 권위자인 김인준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교육·주거 문제 해결 없이는 저성장 위기를 피하기 힘들다"고 일갈했다. 지원금으로 출산율을 결코 높일 수 없으며, 유아·초등교육에 과감하게 투자하라고 했다. △3~5세 아이에게 의무교육제도 실행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국가가 책임지고 돌보기 △보육교사 초등교사 수준으로 대우 △보육 시설도 초등학교와 공동 사용 △초등교육도 6세부터 시작해서 조기에 사회로 진출 등을 제시했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생기는 재원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귀에 쏙 들어오는 제언이다. 덧붙여 공교육이 사교육 영역을 흡수함으로써 사교육비를 없애고, 대학등록금도 무료로 했으면 한다. 국가가 책임지고 아이를 맡아야 한다. 주거 문제는 과잉공급된 빈집으로도 해결된다.
장용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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