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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미〈생명평화아시아이사〉 |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 주면서/ 속을 비워 간다/ 빈 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리고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공광규 시인이 쓴 '소주병'이란 시다.
아버지는 저녁 밥상마다 소주 한 병을 반주로 드셨다. 그 시대 많은 아버지들처럼 하루하루 고단한 삶의 짐을 소주로 달랬을 것이다. 술병이 잔에다 자기를 따르면서 속을 비워 가듯이 가장의 무게를 견디며 자신의 속을 비워 갔을 것이다. 가장이라는, 남성이라는 껍데기를 유지하기 위해 아버지는 갑옷처럼 더 딱딱해져 갔다. 불안하고 여린 속이 들킬까봐 더 까다롭고 거칠어져 갔다. 잔을 채우고 또 채우느라 속을 다 비워낸 소주병처럼 아버지는 길거리나 쓰레기장을 굴러다니는 빈 소주병처럼 더 쓸쓸하고 외로워졌다.
아버지에게 치매가 오기 직전 늦깎이로 들어간 박사과정 수업 과제로 아버지와 인터뷰를 했다. 일제강점기 초등학교를 다녔던 당신께선 학교에서 돌아와 부엌으로 갔을 때 부뚜막에 술 한 병과 삶은 달걀 두 개가 놓인 것을 보았다. 배고픔이 일상이었던 나날이었지만 그날 따라 유독 더 고픈 배를 참지 못해 순식간에 달걀 두 개를 먹어치웠단다.
잠시 뒤 나타난 할머니가 삶은 계란이 없어진 것을 봤다. 순사가 청결 순시 나올 때 대접하려고 준비한 달걀인데 "아이고 우야꼬"를 연발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할머니를 보고 너무나 무서워 동구 밖으로 줄행랑을 치셨단다. 그 기억을 회상하는 아버지의 두 눈에 보일 듯 말 듯 눈물이 고였다. 아이가 느꼈을 공포와 죄책감, 수치심이 여든 넘은 아버지의 깊은 내면에 아직도 일렁이는 것을 보일 듯 말 듯 한 눈물에서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부정해야 했던 식민지를 지나 동족상잔의 전쟁 말미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아 긴 독재의 터널 동안 큰소리 칠 데라곤 만만한 아내와 자식밖에 없어 집안의 폭군이 되었던 무골호인 우리 아버지. 너무나 혹독했던 배고픔을 겪어서인지 가족보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더 보살폈던 선량한 아버지. 어머니에겐 별난 남편이었고, 자식들에겐 엄격했던 아버지의 기일이 다가오며 바람이 세차게 불던 밤 마루 끝에 쪼그려 앉아 우는 빈 소주병처럼 아버지 홀로 외롭게 삼키셨을 눈물이 떠오른다.
차우미〈생명평화아시아이사〉

차우미 생명평화아시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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