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황성동 석실고분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황성동 여인 토용'. 왼손으로 입을 가린 듯한 자세와 병을 든 모습, 저고리와 치마의 주름이 사실적으로 표현돼 천년 전 신라 사람의 복식과 몸짓을 보여준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금관도 아니고, 불상도 아니다. 수줍은 신라 여인의 모습을 한 작은 흙 인형이 파리로 간다.
경주 황성동 석실고분에서 나온 이 토용은 오는 20일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 국립기메아시아예술박물관 전시장에 선다. 전시 제목은 '신라: 황금과 신성'. 유럽에서 신라만을 단독으로 조명하는 첫 특별전이다.
그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끄는 유물이 있다. 경주 황성동 여인 토용이다.
황성동 여인 토용은 금관처럼 화려하지 않다. 불상처럼 종교적 상징을 전면에 드러내지도 않는다. 높이 16.5㎝의 작은 토제 인형이다. 하지만 이 유물은 신라를 '왕의 나라'나 '불교의 나라'로만 보지 않게 한다.
금관이 왕권을 말하고 불상이 신앙을 말한다면, 황성동 여인 토용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얼굴을 보여준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품번호 경주7149인 이 토용은 경주시 황성동 석실고분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유물이다. 무덤의 연대는 7세기 후반경으로 추정된다.
이 토용은 왼손으로 입을 가리고 수줍은 웃음을 띤 모습이다. 단정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잘 표현돼 있다. 머리에는 가운데 가리마가 선명하고 한 손에는 병을 들고 있다. 발끝만 살짝 나온 모습이며 저고리와 치마의 주름도 사실적으로 새겨졌다.
작지만 오래 보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입을 가린 손동작, 병을 든 자세, 옷자락의 주름은 천년 전 신라 사람의 몸짓과 옷차림을 상상하게 한다.
김현희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과장은 영남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번 전시는 신라 초기부터 철기 문화, 불교까지를 다 보여주는 맥락 속에서 구성됐다"며 "신라 사람이나 그 모습에 대한 정보가 굉장히 희소해 토용을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신라 유물은 많지만 신라 사람의 실제 모습과 생활 감각을 전하는 자료는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황성동 여인 토용은 전시의 빈틈을 채운다. 신라의 황금 문화와 불교미술 사이에서 이 작은 흙 인형은 '사람의 신라'를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황성동 여인 토용의 뒷모습. 머리 모양과 허리선, 길게 내려온 옷자락이 비교적 뚜렷하게 남아 있어 통일신라시대 인물 표현과 복식의 뒷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다만 토용의 자세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김 과장은 "입을 가리고 있거나 병으로 보이는 물건을 들고 있는데 어떤 의도에서 제작해 넣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며 "당시 어떤 상황을 연출한 것으로 추측할 뿐"이라고 말했다.
정답이 없어서 오히려 더 흥미롭다. 이 여인은 누구였을까. 왜 입을 가렸을까. 손에 든 병은 물병이었을까, 술병이었을까. 무덤에 이 인형을 넣은 사람들은 무엇을 바랐을까. 황성동 여인 토용은 이런 질문을 통해 신라를 딱딱한 역사 지식이 아니라 상상 가능한 사람의 이야기로 바꿔 놓는다.
복식도 중요한 단서다. 황성동 여인 토용의 복식사적 가치는 인근 용강동 고분 출토 토용들과 비교할 때 더 선명해진다. 용강동 토용들이 당나라 관복인 단령을 입고 홀을 든 문관의 모습을 띠는 등 외래의 영향을 강하게 보여준다면, 황성동 여인 토용은 둥근 깃에 발등까지 덮는 긴 표의를 입은 모습으로 설명된다. 당풍이 유행하던 시기에도 신라 생활 복식의 흔적이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단서로 볼 수 있다.
김 과장은 "태종무열왕인 김춘추가 당에 가서 당의 복식 사용을 허락받고 돌아왔다는 기록과 함께 볼 때 용강동에서 보이는 토용은 중국 복식과 많이 닮아 있다"며 "반면 황성동 토용은 중국 복식이라기보다 신라 복식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주 황성동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황성동 고분. 아파트와 상가, 학원가에 둘러싸인 낮은 봉분은 황성동 여인 토용이 출토된 공간이 오늘의 생활권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장성재 기자>
박임관 경주문화원장도 황성동 여인 토용을 신라 생활 복식의 흐름 속에서 봤다. 박 원장은 "용강동 토용은 관료들의 복장이고 황성동 토용은 일반 서민들의 복장으로 보면 된다"며 "요즘으로 치면 중산층 여성이 입던 옷에 가까운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손에 든 병도 생활사를 상상하게 한다. 박 원장은 "그때는 물이 아주 중요했다"며 "요즘 사람들이 텀블러를 들고 다니듯 귀한 물을 담아 다니는 병으로 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이 모습을 "현대 젊은 여성이 핸드백이나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장면과도 견줘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작은 흙 인형이 천 년 넘게 잠들어 있던 경주 황성동 고분은 현재 아파트와 상가, 학원가에 둘러싸인 도심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용강동 고분과 함께 경주 북쪽 평지에 위치한 대표적인 굴식돌방무덤으로 꼽힌다. 한때 방치되기도 했지만 발굴 조사를 통해 통일신라시대 귀족 무덤으로 추정되는 유적임이 확인됐다.
천 년 전 여인의 미소를 품고 있던 무덤이 오늘날 시민들의 일상 공간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은, 신라의 역사가 박제된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황성동 여인 토용은 먼 박물관 속 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경주 시민들이 오가는 동네 아래에서 나온 신라 사람의 얼굴이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파리는 예술의 도시이자 세계적인 패션의 도시다. 그곳에서 천년 전 신라 여인의 옷차림과 몸짓을 보여주는 토용이 관람객을 만난다.
박임관 원장은 파리 관람객들이 이 토용에서 소박하지만 깊은 미감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는 "동북아시아 신라라는 나라의 여인 모습을 한 유물을 보며, 단순하면서도 느낌이 오는 고졸한 미적 감각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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