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내 남은 삶을 보다

  • 이형국 대구문인협회 시분과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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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6-28 15:52  |  발행일 2026-06-29
이형국 대구문인협회 시분과 부위원장

이형국 대구문인협회 시분과 부위원장

노부부가 구내식당으로 들어왔다. 한 발짝 또 한 발짝 걸음이 힘겹다. 안경 낀 할머니가 반걸음쯤 앞장서서 오른손으로 영감님 손을 끌면서 식탁 쪽으로 다가간다. 허리가 1/3쯤 허리가 굽어진 영감님은 오른손에 지팡이를 짚고 왼손을 잡힌 채 무거운 발걸음을 떼고 있다.


팔십 세는 훨씬 넘은 듯한 두 분은 젊었을 때의 모습을 미뤄 짐작할 만큼 모두 장신이다. 식당 배식구에서 배식을 도와주던 종업원이 달려와 노부부에게 배식하기 편리한 자리로 안내한다. 나하고 마주 보이는 건너편 식탁이다. 노부부가 나란히 앉았다. 원칙은 '자가 배식'이지만 노부부에게는 종업원이 식탁까지 음식을 날라다 드리는 친절을 보인다.


두 분 모두 비빔밥을 시키신 듯하다. 배가 고팠는지 푹푹 떠서 잘도 잡수신다. 할아범은 조금 전에 끌려가던 걸음걸이와는 달리 연세에 비해 팔 동작을 곧잘 하셨고, 할멈은 수전증이 있으신지 숟가락이 물결처럼 흔들렸지만 흘리지도 않고 잘 드셨다. 나도 김밥을 씹으면서 건너편의 동향을 주시했다. 혹시나 빤히 쳐다보는 게 실례될까, 고개를 잠깐씩 두리번거리며 시선을 분산시켰다.


동행 글벗들이 일어나기에 하는 수 없이 자리를 떠나면서, 맛있게 그리고 단단히 잡숫고 가시라며 노부부에게 기도한다. 부모님 살아생전과 어이 저리도 같은 모습일까. 내 어머니, 아버지를 본듯했다. 생전의 선친과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린다. 아버지는 걸음걸이가 빠르셨다.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보소보소, 좀 천처이 가소."


따라잡지 못하는 어머니가 손을 휘저으며 아버지를 부르신다. 그리곤 어머니는 혼자 불평하신다.


"어이구 영감탱이가 저렇게 정나미 없어서야."


멀거니 바라보시면서 어머니께 씩 웃으신다. 미안하다는 뜻이다.


내 형제는 부모님 모시고 노래방에 가끔 갔다. 어머니는 노래방에 음악 선율이 흐르기 시작하면 아버지 노래시켜라면서 독촉이 잦았다. 아버지는 마이크를 두어 번 밀어내시다가, 어머니 쪽을 힐끔 보고는 마지못한 듯 노래하신다. 어머니는 새색시처럼 빤히 올려다보면서 손뼉 치시고, 그 하나하나의 모습이 그립다.


아버지와 같았던 나를 생각한다. 나도 걸음이 빨라 늘 아내하고 떨어져서 걷는다. 한번은 동네 동생 부부와 함께 식당가다가 뒤에서 동생이 불렀다.


"형 우리하고 다니는 게 부끄러워서 그러는 거야. 그러려거든 만나지 말고."


짐짓 화를 내었다. 잘못을 알아차린 나는 뒤통수를 긁으며 웃었다. 평상시엔 그러지 않는데 걷기만 하면 그런다. 하지만 다른 것도 있다. 이제 아내와 나는 건망증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얼마쯤은 서글픈 웃음으로 서로를 묵인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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