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산학연구원 기획실장
독도가 허락한 시간은 40분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산란철 괭이갈매기에게 이 섬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배웠다. 조용한 바위섬일 줄 알았던 독도는 알고 보니 괭이갈매기들의 분주한 육아 현장이었다.
6월 중순, 독도의 바다는 잔잔했다. 일 년에 몇 날만 길을 열어주는 섬에 발을 디딘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었다. 그러나 막상 섬에 오르자 가장 먼저 나를 맞은 것은 장엄한 바위도, 푸른 바다도 아니었다. 새끼를 지키려는 괭이갈매기들의 날카로운 울음이었다.
바위틈 사이로 회색 솜털을 보송하게 두른 새끼들이 보였다. 어미 새들이 왜 그토록 예민하게 날아오르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은 독도를 외로운 섬이라 부르지만, 내가 만난 독도는 괭이갈매기의 날갯짓과 경계음으로 가득한 생명의 섬이었다. 돌섬이라 불리고, 독섬이라 불리던 그 단단한 바위틈마다 생명의 기척이 꿈틀대고 있었다.
이곳에 오르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독도를 기억한다. 태극기를 펼치고, 구호를 외치고, 짧은 퍼포먼스로 마음을 남긴다. 이번 제1차 독도수호원정대에 함께한 새마을문고대구시지부는 아이들의 그림으로 그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아직 그곳에 가보지 못한 아이들이 마음으로 그린 섬은 하나의 현수막이 되어 바다를 건넜다. 독도의 바람 앞에 그 커다란 그림을 펼치는 순간, 마치 아이들이 "잘 있었니?" 하고 조용히 안부를 건네는 듯했다.
그 조용한 안부가 바람 속에 머무는 사이, 거문고 명인은 손가락 사이에 술대를 단단히 끼웠다. 이윽고 여섯 현이 낮게 떨리며 아리랑을 깨웠다. 선율은 바람을 타고 바위에 닿고, 파도에 실려 괭이갈매기의 울음 사이로 스며들었다. 익숙한 아리랑이었지만, 독도에서 듣는 아리랑은 전혀 달랐다. 그것은 노래라기보다 오래 지켜온 마음이었고, 가슴 깊이 새겨지는 다짐 같았다.
아리랑이 잦아들 무렵, 나는 아이들의 그림 앞에서 창작시 '독도 앞에서'를 낭독했다. 첫 시구에서 호흡이 툭 걸렸다. 마지막 세 줄에 이르자 가슴이 뜨겁게 조여왔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
우리가 부르는 한,
그대는 언제나 대한민국의 가장 뜨거운 가슴입니다.
우산도에서 삼봉도, 가지도, 석도로 이어져 온 이름들이 바위마다 켜켜이 쌓여 있는 듯했다. 그때의 독도는 지도 위의 작은 점이 아니라, 아이들의 그림과 아리랑, 그리고 시가 함께 닿은 살아 있는 섬이었다.
낭독을 마치고 전망대에 올라 눈부신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표지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내려오는 길, 경비대원의 발치를 지키던 삽살개 대한이와 눈이 마주쳤다. 깊고 순한 눈빛이었다. 그 찰나를 사진에 담는 순간, 고요한 돌섬인 줄만 알았던 독도는 단단한 표정을 거두고 뜻밖의 온기를 내밀었다.
이윽고 평화호의 경적이 울렸다.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선착장은 서서히 멀어지고, 경비대원들의 거수경례가 바다 위에 오래 남았다. 말없이 그 배웅을 눈에 담으며 나는 마음 깊이 고마움을 전했다.
일주일이 지나 이 글을 쓰며 비로소 알았다. 괭이갈매기의 울음과 아이들의 그림, 아리랑과 바람에 흩어진 시, 그리고 대한이의 눈빛까지. 그 모든 것이 단 40분 동안 내게 찾아온 작은 기적이었다. 외로운 섬이라 불리던 독도는 그날 분명히 말해주었다. 자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그 섬을 지키고 기억하는 마음들이 함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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